투자에서는 좋은 스승을 만나기도 어렵고, 좋은 원칙을 배우기도 어렵다. 소위 ‘투자의 기초’를 알려준다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살펴보면 다분히 용어 설명에 그치거나,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놓은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결국 투자는 직접 부딪히고 깨져가면서 배우는 거야”라는 말이 진실에 가장 가깝긴 하지만, 그렇게 ‘던져진 존재’가 되어서 혼자 힘으로 풍랑을 헤쳐나가기에는 시장은 너무 가혹하다.
그런 면에서 책은 아주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검증된 대가들의 경험담과 원칙, 혹은 그들을 연구한 사람들의 진중한 결과물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투자 책을 고르는 데에도 좋은 주식을 고를 때만큼이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매년 수십 수백 권의 투자 서적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들을 다 읽어볼 시간도 당연히 없거니와, 누가 무엇을 얼마나 검증한 책인지도 알기 어렵다.
‘우량 투자서 선정’은 투자를 직접 경험한 사람, 그중에서도 책을 꽤 읽었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읽어보고 유익했다고 판단한 책들을 골라내는,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 큰 영광이다.
지난 1년 동안에도 많은 책이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한 권 쓰는 중이었는데, 상당히 많은 참고 자료를 요하는 글이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몇몇 책은 저술하던 책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메꿔주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어찌나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책이 출간되었던지.
《벤저민 그레이엄의 성장주 투자법》은 그레이엄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던 가설, 그레이엄은 저PBR 등 수치상 저평가주, 소위 ‘가치주’라고 불리는 주식에만 투자한 것이 아니라는 가설이 옳았음을 입증해주었다. 《현명한 투자자》 초판에만 나와 있던 글, 《증권분석》 4판에 등장했다가 그레이엄 사후에 사라진 글 등을 이 저자가 복원해주지 않았다면, 내 가설을 직접 입증하느라 진땀을 빼거나 가설을 폐기해야 했을 것이다.
워런 버핏과 관련해서도 상당히 많은 자료를 인용해야 했는데, 《포춘으로 읽는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과 《더 레슨》은 다른 버핏 관련 책에서 보기 어려웠던 자료들을 대량으로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버핏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설들, 그가 그레이엄과 어떻게 핵심 사고 체계를 공유하면서도 자신만의 기법으로 발전시켜왔는지,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풍부한 해석을 더할 수 있었다.
《필립 피셔의 최고의 투자》는 정말 뜻밖의 선물이었다. 워런 버핏은 피셔의 ‘첫 두 권의 책’이 《현명한 투자자》에 맞먹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한 바 있다. 다들 알겠지만 버핏에게 《현명한 투자자》는 거의 성경에 준하는 입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그 두 권의 책이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와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책은 바로 이 《최고의 투자》였다.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게 참으로 부끄럽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최고의 투자》는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의 주요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서 핵심 내용을 좀 더 깊게 보완해주는 책이다. 특히 원서의 출간 시점(1960년)은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고민이 상당하던 시절이었는데, 인플레이션에 대한 피셔의 시각을 알 수 있어 현시점의 우리에게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