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5일 작성한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의 'Via Negativa' 칼럼입니다. 이 글은 특정 종목이나 업종의 매수매도를 추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투자의사결정은 각자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여야 합니다.


​약세장에 다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좀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저도 공사가 다망하여 생각만큼 포스팅을 많이 하지 못하고 있네요.

​어디선가 그런 글을 봤습니다. 약세장에 위로하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무엇을 잘못했는지 회고하고 반성해야 한다. 맞습니다. 사람이 ㅊ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고 겸손해지고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빠르게 받아들이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경험이 얼마 안 되는 투자자 분들은 주식이라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점을 여실히 깨닫고 계실 텐데요. 경험이 많이 쌓인 투자자라도 이런 시기에 쉽사리 빠지는 함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금리인상이니 인플레이션이니 하는 이야기는 사실 작년부터 나왔습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과 상하이 봉쇄라는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긴 했지만, 인플레이션이 수요와 기업 실적을 압박하고 유동성이 자본시장을 압박하는 큰 그림은 충분히 전망할 수 있었죠. 덕분에 연말연초에 현금을 확보해놓은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문제는 이분들 중 일부가, 1월의 하락을 피했지만 2, 3월에 다시 진입해서 4월에 얻어맞고, 그 하락을 피한 사람들이 5월에 진입했다가 6월에 또 얻어맞았다는 점입니다. 《주식하는 마음》 2장에서 묘사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미리 잘 팔고 나왔던 '도파민 뿜뿜' 투자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네, 다시 삽니다. 왜냐고요? 난 똑똑하니까요. (중략) 내가 보기에 지금이 바닥입니다. 여기서 더는 하락할 리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똑똑하신 '나님'께서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물립니다."

제가 방송 등에서 늘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측게임을 하지 말라고요. 예측게임을 하다 보면 한두 번은 맞힐 수 있지만, 언젠가는 틀립니다. 문제는 그렇게 맞힐 때마다 베팅비율이 더 늘어난다는 거죠. 남들이 못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는 착각이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파멸로 이끕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올해 주주총회에는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습니다. "시장의 타이밍은 맞힐 수 없다고 말해놓고, 당신은 왜 그렇게 잘 맞히는 겁니까?" 실제로 버핏은 굵직한 타이밍을 상당히 잘 맞혔습니다. 1969년 파트너십을 청산한 이후에 주가는 급락했고요. 74년에는 다시 주식을 사야 한다고 했습니다. 99년에는 시장이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고 했고, 2008년 10월에는 주식을 살 때라고 했지요.

​버핏의 답변은 늘 그렇듯 한결같았습니다. "저는 그걸 맞히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싸 보이는 주식이 있어서 샀는데, 사다 보니 저점이었고, 싼 주식이 안 보여서 안 사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시장은 고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던 거죠. 바텀업 투자자의 마켓 타이밍에 대해서는 곧 출간될 〈버핏클럽 5호〉에 기고문을 실었으니, 그걸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서는 좀 더 실질적이고 급박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버핏을 추종하는, 혹은 버핏과 마찬가지로 가치 기반의 사고 체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작년 하반기의 하락장을 피해가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들 비쌌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런 훌륭한 투자자분들이 작년 말 혹은 올해 상반기에 공격적으로 베팅을 했다가 손실을 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물론 평가손실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 그때의 매수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추가 하락을 염두에 두고 일부 비중 확대를 하였다면 이후의 하락에도 멘탈이 크게 깨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 버핏조차 2-3월에 수십조 원의 자금을 집행했는데, 멀쩡하지 않습니까. 버크셔 주식도 연초 이후 -8% 수준이고, 최근 한 달간 낙폭은 -10% 수준입니다. 버핏은 바닥을 잡았다고 생각해서 자금을 집행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비율입니다.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투자와 투기의 차이점은 오로지 비율뿐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위험한 자산인가, 얼마나 공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그건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기준이 아닙니다. 유리한 확률에서, 유리한 만큼만 베팅하면 투자입니다. 불리한 확률에서 베팅하면 투기입니다. 유리한 확률이라도 과하게 베팅하면 투기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투자와 투기의 구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좋은 투자'와 '나쁜 투자'의 구분 기준은 바로 이 '베팅비율'입니다.)

​1월의 하락이 지난 후에도, 4월의 하락이 지난 후에도 언제나 더 하락할 여지는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2020년 3월에도 추가로 하락할 여지가 없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나요? 중요한 건 바닥을 예측하는 게 아니라 업사이드 포텐셜(상승 잠재력)과 다운사이드 포텐셜(하락 잠재력)의 비대칭성을 추론하고, 그에 맞는 비율로 베팅하는 일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예측이 아니라 노출입니다.

​여기까지 서론이었고요. 오랜만에 글을 쓰다 보니 서론이 길었네요.

​본격적으로 할 얘기는 이겁니다. 손익비는 구했다 치고, 거기에서 얼마를 베팅하는 게 옳으냐 라는 거죠. 업사이드 포텐셜이 50%, 다운사이드 포텐셜이 -30%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재산의 90%를 베팅해야 합니까, 아니면 30%를 베팅해야 합니까? "아직 한 발 남았다"를 외치고 싶다면 늘 현금을 확보해둬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얼마만큼의 현금이 적정한지 어떻게 압니까?

​쉬운 대답이자 현인처럼 보이는 대답은 이거죠. "각자가 경험해가면서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주식시장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이 대답이 맞긴 한데요. 베팅비율에 있어서는 '공식'이 존재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하는 모든 논의는, '업사이드 포텐셜'과 '다운사이드 포텐셜' 정도는 스스로 구할 줄 안다고 가정하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각자가 경험해가면서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업사이드 포텐셜이 30%, 다운사이드 포텐셜이 -25%인 경우를 생각해보죠. 베팅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승리:패배 확률은 반반이라 칩시다. 그럼 일단 손익비는 유리하니까(30%>25%) 베팅을 하는 게 낫긴 하겠죠? 아닙니다. 이 게임에서의 기대수익률은 마이너스입니다.

​네? 승리 시 30%, 패배 시 25%이고 확률은 반반이니까 기대수익률은 2.5% 아니냐고 하겠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베팅을 계속 반복하면 손해로 끝납니다. 1.3 x 0.75 = 0.975 거든요. 산술평균은 플러스지만 기하평균은 마이너스입니다. 누적 수익률 계산은 기하평균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이 확률분포에서 베팅을 하는 건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그러면 게임을 안 해야 할까요? 그래도 산술평균은 플러스인데 말입니다? 이런 손익비가 플러스인 게임을 찾아내는 일도 쉽지는 않은데,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흠 그럼. 반만 베팅해봅시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15 x 0.875 = 1.0063 이 됩니다. 어라, 플러스네요? 벌 때 덜 벌고 잃을 때 덜 잃었더니 기하평균이 플러스가 됩니다.

​베팅비율을 10%씩 조정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베팅비율을 줄여갈수록 100% 베팅일 때보다 기하평균 값이 꾸준히 증가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을 지나면 다시 감소하죠. 너무 보수적인 베팅은 결국 벌 때 제대로 벌지 못하게 되면서 전체 수익률을 낮춘다-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