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한다면

자 다시, 오늘 주식투자를 시작하려는 사람의 관점으로 돌아가봅시다. 이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요? 옆에서 너도나도 돈을 벌고 있으니 조급한 마음에 빨리 시작하려고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주변에서 모두가 우울해하고 있어서 과연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을까요? 둘 중 어떤 사람이 많을 때 우리는 주식시장을 '평온하게' 느낄 수 있을까요? 혹시 대답이 명확하다면, '나의 최근 6개월 수익률' 때문에 그 명확한 대답을 못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은 2022년 10월 5일 작성한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의 'Via Negativa' 칼럼입니다.


어제 저는 꽤 재미난 경험을 했습니다. 어떤 방송 촬영이었는데요. 방청객이 주식투자 관련 고민거리를 제시하고, 저를 포함한 패널들이 나름의 조언을 하는, 일종의 '고민상담소' 같은 방송이었습니다. 현장에는 다양한 투자 경험을 가진 분들이 나왔는데요. 대부분 주식투자로 손실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두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은 반도체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과감히 빠져나와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전기차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과감히 빠져나온 다음 반도체 주식을 살 때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손실난 주식, 혹은 이익난 주식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 일은 매우 흔합니다. 저는 그때마다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 평가액만큼이 현금이라면, 그 금액만큼 이 주식을 다시 살 건가요?" 대답이 '그렇다'라면 포지션을 유지하시고, '아니다'라면 원하는 포지션만큼 줄이면 됩니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애초에 잘못 산 것이니 주식을 계속 보유할 자격이 없습니다.

《주식하는 마음》 3장 3절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기' 파트에서 이 내용을 상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물타기, 불타기, 손절, 익절을 고민합니다. 이 네 가지 질문에는 모두 '나의 매입 단가 대비 수익률'이라는 지표가 의사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회학에는 '경로의존성'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갈림길에서 A와 B 두 가지 경로가 있을 때, A가 완전히 더 우월한 선택지라 하더라도, 행위자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에 따라 B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현시점에서의 미래'만을 바라보고 의사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걸어온 길'이 의사결정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현상을 '경로의존성'이라고 합니다.

투자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현시점에서 미래의 시나리오별 확률분포를 그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특정 1인의 '매입단가'가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요? 수십 수백만 명의 주주 중 한 명의 투자자가 얼마에 이 주식을 샀는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까요? 그 한 명이 '나'라는 이유로, 그 한 명의 '매입단가'가 미래 확률분포 추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은 분명 비합리적입니다.

다시 아까의 방송으로 돌아가봅시다. 반도체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A는 반도체에서 손을 털고 나와야 하는지 아닌지를 고민합니다. 그에게 반도체 주식은 커다란 아픔을 준 존재이고, 어떻게 이 아픔을 지워버릴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한편 전기차 주식에 물린 B에게 반도체 주식은 기회의 땅입니다. 반도체는 현대 사회의 쌀과 같은 존재라 없어지지 않을 텐데, 이렇게 당장 망할 것처럼 주가가 빠져 있으니, 여기서 잘 '줍줍'해서 주가 상승을 누린다면 상당히 멋있는 투자 아니겠습니까.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심사가 현저히 다른 이유는 두 사람이 걸어온 경로 때문입니다. A는 반도체에서 이미 아픔을 보았고, B는 그러지 않았죠. B에게는 전기차 주식이 아마도 A에게 반도체 주식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식시장을 떠나 있던 C는 "지금이 주식을 시작하기 좋은 때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주식시장은 공포가 일상화되어 있고, 주가 상승도 별로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어차피 또 좀 이러다 말 거야." "난 관심 없어." "아직도 주식 같은 거 하니?" "난 도박 안 좋아해." 이런 이야기를 일상에서 접할 수 있지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바닥이니,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타이밍'을 노리고 들어온 사람은 언제고 타이밍이 어긋났을 때 또 당황합니다. 타이밍이 맞아도 문제인데, 맞힐수록 자신감에 차서 베팅 금액을 늘려가거든요. 타이밍은 결국 한 번은 반드시 틀리게 마련입니다. 베팅 금액이 커질수록 그 한 번의 타격으로 다시는 게임에 복귀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저 늘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자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C의 눈에 주식시장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9월 말일 자로 코스피 시가총액은 1,698조 원으로 하락했습니다. 10월 첫 날 큰 폭 반등하여 1,742조가 되긴 했습니다만, 1,700조가 뚫리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코스피 순이익 전망치가 아직 170조 초반이거든요. 저는 4분기가 지나면 160조 언저리까지 하락할 거라고 보긴 합니다만, 현재까지의 컨센을 기준으로 보면 드디어 PER 10배를 하회했습니다.

그간 제가 여러 방송에서 시장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한결같이 코스피 PER 밴드라는 단순한 지표로 말씀드린 걸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대표적으로 2021년의 마지막 삼프로TV 방송이 있습니다. (이 방송 이후 6개월간 게스트로 안 나갔습니다. ㅎㅎ "너 같은 놈 때문에 국장이 안 되는 거다" 어쩌고 하는 악플이 있더라고요. 에휴.)

코스피 PER은 대체로 포워드 기준 8배-12배 사이를 오갔습니다. PER 10배 언저리로 내려왔으면 이제는 '가벼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별 주식 위주로 잘 고르면 됩니다. PER 12배 언저리에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복구하기 힘든 급락을 맞을 수 있으니, '여기서 주가가 반토막이 나더라도 믿고 버틸 수 있는 주식' 위주로 투자해야 합니다. PER 8배 언저리에서는 개별 주식보다는 '시스템 리스크'를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연준은 잘 작동하고 있는가, 어떤 정책 카드를 쓸 수 있는가, 은행이나 보험사가 붕괴될 위험은 없는가,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은 원활하게 되고 있는가, 전쟁이 난다면 자국을 지켜낼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보고 대답이 '그렇다'라면 용기를 내서 주식을 사야 합니다. (무작정 '밴드 하단이니까 사자' 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저는 여전히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PER 12배가 밴드 상단이라 해서 14배로 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익이 더 늘어서 PER 12배 그대로더라도 주가는 더 올라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PER 8배가 바닥도 아니고요. 실적이 깨지고 PER이 15배로 상승하는데 주가는 급락하는 그런 기이한 일도 자주 벌어집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보완하고자 PBR 밴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최근 20년 사이에는 PBR 0.8배면 그럭저럭 괜찮은 바닥 시그널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건 '현시점에서 장기간 보유했을 때의 장기 기대수익률'입니다. 그리고 그 장기 기대수익률을 추정하는 데 있어서 집중해야 할 포인트가 그때그때 다르다는 거죠. 코스피 PER이 12배일 때에는 웬만한 기업들의 장기 기대수익률이 한 자리대일 것입니다. 괜찮은 종목으로 압축해야 합니다. (주식을 싹 다 팔면 안 되는 이유는 파티는 마지막이 가장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파티장을 일찍 나섰다가 최후의 불꽃놀이를 놓쳤다는 아쉬움에 다시 허둥지둥 파티장으로 들어오는 것만큼 꼴사나운 일이 없습니다.) 코스피 PER이 10배일 때에는 괜찮은 기업(=장기 기대수익률이 10% 중후반은 되는 기업)이 다수 있으니 그간 갈고닦은 리서치 역량을 활용해서 좋은 기업을 골라 담으면 됩니다. 코스피 PER이 8배일 때는 웬만한 기업이 장기 기대수익률이 잘 나올 겁니다. 이때 중요한 건 종목을 잘 고르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망하냐'입니다. 주식시장이 망해버리면 모든 게 끝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 종종 일어났습니다. 러시아, 중국,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은 모두 한 차례 이상 모든 부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자 다시, 오늘 주식투자를 시작하려는 사람의 관점으로 돌아가봅시다. 이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요? 옆에서 너도나도 돈을 벌고 있으니 조급한 마음에 빨리 시작하려고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주변에서 모두가 우울해하고 있어서 과연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을까요? 둘 중 어떤 사람이 많을 때 우리는 주식시장을 '평온하게' 느낄 수 있을까요? 혹시 대답이 명확하다면, '나의 최근 6개월 수익률' 때문에 그 명확한 대답을 못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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