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대공황 발발 다음 해인 1930년에 태어났다. 버핏의 전기를 읽어보면 특유의 낙관주의적 기질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아버지가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어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 최악의 시기에 태어나 일생 동안 좋아지는 과정만 경험했으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뭐든 상황이 나쁠 때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건데, 버핏이 경기침체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은 타고난 체질 때문인가 싶다.
이런 버핏의 고향, 오마하에 대한 첫인상은 몇백 년을 훌쩍 넘긴 도시답게 역사가 켜켜이 묻어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가 열리는 CHI 헬스센터 주변에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호텔이 즐비한데, 바로 그 아래 위치한 블록이 바로 오마하의 구도심에 해당하는 올드마켓(Old Market)이다. 이 구역의 건물들은 국가역사기념물(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된, 지어진 지 100~150년씩 된 것들이 많다.
역사의 도시 오마하
오마하를 ‘워런 버핏이 사는 시골 동네’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 사람이 많지만, 사실 오마하는 1800년대 서부 개척 시대부터 대륙횡단철도의 중심지 역할을 해 크게 부흥했던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1862년 링컨 대통령이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건설법에 서명하게 되고, 이 열차의 기착지로 정해진 곳이 오마하였다. 미국 1위 철도회사인 유니언퍼시픽(Union Pacific) 본사가 오마하에 있는 이유다. 2009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력 포트폴리오가 된 ‘BNSF’ 역시 철도회사인데,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버핏이라는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역사적 배경을 가진 도시와 건물이 최근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에 3대 미국재건법 중 하나인 ARPA(American Rescue Plan Act)가 통과되면서 네브래스카주에 60억 달러에 가까운 예산이 배정되었고 그중 오마하시에는 2%에 해당하는 1.12억 달러가 할당되었다. 오마하시 2023년도 예산이 4.7억 달러이므로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2022년부터 노후주택개선 프로그램과 놀이터, 광장, 공원 등 공공시설 확충 관련 예산이 집행되었고 호텔 및 관광산업진흥 및 지역재단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분명 100년 된 낡은 건물인데도 외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진입로와 입구가 멋지게 개보수된 것을 보면서 신기하다 싶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인프라 법안 효과였던 것이다.
오전 일찍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서, 버핏이 거주하는 파남스트리트(Farnam Street)의 자택에 가보았다. 버핏이 60년 가까이 한집에서 살다 보니, 구글에 검색해보면 주소까지 다 나온다. 주주총회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데, 경호원들이 수시로 나와 주차된 차를 치우라며 제지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달리 높은 철제 담이 둘러 있고 수목이 두루두루 식재되어서 안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다. 연예인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니 아주 불편하시겠다 싶었지만 이제 한국 나이로 94세이니 건강하실 때 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일견 이해가 간다.
점심은 영상에서 자주 보던, 버핏이 드라이브 스루로 자주 들르던 맥도날드에서 먹었다. 한 미국인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여기는 아시아 사람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지역인데 오늘 갑자기 많이 보여서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서빙하는 종업원이 “내일이 워런 버핏 행사 아니냐, 그래서 많이들 온 것 같다”고 설명했고 우리도 같이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마하의 인구는 48만 명인데 매년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4월 말~5월 초 오마하를 방문하는 사람만 4만 명이 넘는다. 도시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2박 3일 동안 한꺼번에 오마하에 몰려드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러나 버핏 효과가 오마하의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자랑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