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돌아온 지 벌써 5일이 지났는데 문득문득 오마하의 일들이 떠오른다. 많은 분이 내년에는 자신도 가고 싶다면서 참가 방법과 비행기편을 물었고, 다소 보수적이었던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시황관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내년에 꼭 아들과 같이 참석하고 싶다면서 버핏과 멍거 두 분이 오래 건강하면 좋겠다며 웃는 분도 있었다.

버핏이 지금도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를 즐기면서도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은 평생을 함께한 벗 멍거가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버핏에게 멍거는 단순한 친구라기보다 자신의 투자철학과 사상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준 정신적인 스승에 가깝다.

버핏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우리가 정말로 원한 건 자립이었다”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자유를 위해 투자했다는 말이다.

40은 불혹(不惑)이요, 50은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돈을 많이 벌겠다, 출세해서 이름을 떨치겠다 하는 세속적인 목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capitalist)로서 투자자(investor)로서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뜻을 알아주는 벗(知友)을 곁에 두고 평생을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란히 앉아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버핏과 멍거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참 행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파트너를 넘어 정신적·사상적 동반자인 멍거와 버핏


버크셔 주주총회 당일 저녁에 보낸 참관기 2보에서는 시간 제약상 오전과 오후의 Q&A 세션 내용을 자세하게 다루지 못했다. 주총의 주요 내용을 크게 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현금은 쓰레기가 아니다”

올해 주총에서 가장 이슈가 된 부분은, 버크셔가 현금 보유액을 대폭 늘렸고 버핏이 경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코멘트한 것이었다. 버핏은 “전반적인 경제 여건에 대해 피드백을 들어보고 있는데 대다수 계열사가 작년보다 올해 이익이 안 좋을 것 같다”며 “나를 믿어라. 현금은 쓰레기가 아니다(Believe me, cash is not trash). 2008년과 비슷한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분명히 나를 찾는 전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에서 비싼 가격에 베팅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최근 한국에는 장기채권 매수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큰데 버크셔의 포트폴리오는 완전히 거꾸로라서 흥미로웠다. 1년 만기 초단기 채권에 61.2%가 쏠려 있고, 5년 이상의 중장기 채권 비중은 6%에 불과하다. 한 고객의 요청으로 과거 20년간 운용 내역을 조사해보니 매우 이례적인 포지셔닝이었다. 장기채를 사라는 일각의 의견에 전혀 동조하지 않으며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는 것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뱅크런과 은행 위기

버핏은 최근 중소은행 뱅크런에 대해 정부의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오후 세션의 첫 답변이 현재 은행 이슈에 대한 것이었는데, 버핏이 미리 준비한 ‘매도가능증권(AVAILABLE FOR SALE)’과 ‘만기보유증권(HELD-TO-MATURITY)’ 푯말을 뒤집자 관중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근 은행들이 손실이 난 채권을 시가가 아니라 장부가로 평가받기 위해 만기보유증권으로 급하게 전환한 것을 간접적으로 비꼰 것이다.

버핏은 “공포는 전염된다. 두려움이 정당화될 때도 있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뱅크런 때문에 대공황 시절 직장을 잃었는데 FDIC(연방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되면서 은행업이 겨우 살아났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사람들이 은행 예금이 안전한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경제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은행의 실패를 걱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25만 달러인데, 사실상 정부가 무제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다름이 없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에 대한 우려도 드러났다. 버핏은 “미국 다운타운에서 공실이 크게 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는데 상당히 걱정스럽다. 사실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사람들이 2.5%에 돈을 빌렸다가 금리가 치솟자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됐고, 역회전이 걸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얼마 전 멍거가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정도는 아니겠지만 상업용 부동산 부실 대출로 또 다른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이야기해서, 버핏과 멍거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목이다.

AI와 가치투자의 미래

AI가 장안의 화제이다 보니 오전 세션에서 바로 질문이 나왔는데 버핏은 “AI가 헌법을 스페인어로 1초 만에 번역하는 것이 경이로웠다”면서도 “하지만 아지트(보험 부문 총괄 CEO)를 대체할 AI는 있을 수 없다. AI는 일단 농담도 못하지 않느냐”면서 웃었다. 때문에 그는 특정 영역에서는 ‘구식 지능(old-fashioned intelligence)’이 더 잘 먹힐 수 있고, 빌 게이츠가 ChatGPT 최신 버전을 직접 시연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대단한 기술이지만 사람의 유전자(gene)를 대체할 AI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후 AI 시대에 가치투자라는 게 미래가 있겠느냐는 신랄한 질문도 등장했는데 버핏은 “기술이 미래를 다 바꾸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나쁜 결정을 내릴 때 가치투자자들에게 기회가 온다(Opportunity in value investing comes from others doing dumb things). 나이를 먹었고 시대가 변했지만 항상 사람들은 ‘멍청한 짓’을 정말 많이 한다”며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기회를 찾겠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