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라는 자산은 장기로 채권, 부동산, 금 등 다른 전통 자산군 대비 뛰어난 수익률을 보여줍니다. 믿기지 않겠지만요. 더욱 믿기지 않는 사실은, 투자 기간을 장기적으로 늘린다면 수익률의 ‘변동성’ 또한 대폭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투자 기간을 장기로 늘렸을 때 주식은 다른 자산보다 ‘위험은 작고 수익은 더 큰’ 아주 희한한 자산이 되어버립니다. 버핏클럽의 독자라면 익숙한 이야기일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익숙하지 않다면 《거인의 어깨》에 상세히 나오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주식이 이렇게 이상하리만치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주식의 매우 기본적이고, 매우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되는 한 가지 속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걸 이해한다면 여러분의 투자는 아주 명쾌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주식의 아주 특이한 속성 하나는 ‘이익잉여금의 내부 유보를 통한 성장’입니다. 용어가 썩 쉽진 않지요? 차근차근 살펴봅시다.
주식은 ‘기업의 자기자본에 대한 소유권’입니다. 다들 아시죠? 주식회사는 주주로부터 돈을 받아서 열심히 사업을 한 다음 남은 돈을 주주에게 돌려줍니다. 문제는 올해 얼마를 남길지 아무도, 심지어 회사 경영진조차 모른다는 점이고, 돈이 남았다 한들 그 돈을 올해 당장 전부 주주에게 돌려주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점이 많으니 가격이 매일같이 요동칩니다.)
회사가 돈을 벌었으면 이제 그 돈을 돌려주면 될 텐데 당장 돌려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죠? 어차피 돌려줘 봤자 다른 데에 투자해야 할 텐데, 차라리 지금껏 사업을 잘 해온 우리 회사에 이 돈 – 이익잉여금 – 을 남겨서 사업을 확장하는 데 쓰면 나중에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회사가 남긴 이익이 100% 주주에게 배당되지 않고 일부 회사에 남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식의 ‘복리 성장의 마술’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다른 어떤 자산도, 스스로 창출해낸 현금흐름이 내부적으로 재투자되어서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채권에서는 이자가 나옵니다. 투자자가 이 이자를 재투자하려면 새로운 채권을 구매해야 합니다. 부동산 소유자는 임대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임대료를 계속 부동산에 투자하려면 다른 부동산을 구매해야 합니다. 금은요? 나에게 돌려주는 현금흐름 자체가 없죠.
주식에서도 물론 배당금이 나오긴 하고, 이 배당금을 재투자하려면 새로이 주식을 사야 합니다. 자, 여기부터가 중요합니다.
주식에서 받은 배당금을 주식에 재투자하려면 주식을 시장가격에 사야 합니다. 훌륭한 회사라면 시장가격이 장부가 대비 꽤 비싸겠지요. 배당을 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하여 재투자한다면 장부가에 재투자하는 격이 됩니다. 이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회사가 훌륭할수록 말입니다.
ROE(자기자본이익률)는 자기자본 대비 순이익을 의미합니다. ROE가 10%라면 자기자본 100억을 투입해서 10억의 순이익을 낸다는 뜻입니다. 주식의 본질, 즉 ‘주주로부터 돈을 받아 가서 사업을 해서 남은 돈을 돌려준다’라는 개념에 비추었을 때, 그 본질적인 활동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를 뜻하는 지표입니다.
ROE는 당연히 높을수록 좋습니다. ROE가 20%라면 자기자본 100억을 투입해서 20억을 번다는 뜻이죠. 10%짜리 회사보다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주식은 시장에서 얼마에 거래될까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ROE 10%짜리 회사보다는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겠죠. 예를 들어 PBR 2배, 즉 시가총액 200억이라고 해봅시다.
그리고 내가 이 회사 주식을 전체의 10%, 20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다고 합시다. 회사가 이번에 번 20억을 전액 배당해서 내가 2억을 수령했고, 나는 이 돈을 재투자할 예정입니다. ROE 20%짜리인 회사에 다시 투자하고 싶지만 가격이 비쌉니다. 2억 원어치 모조리 주식을 사면 지분을 1% 늘릴 수 있습니다.
이 회사가 다음 해에 또 ROE 20%를 내서 20억을 벌고 전액 배당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몫은 2.2억이겠지요. 이익률 20%짜리 회사에 2억을 추가 투자했는데 돌아오는 돈이 2천만 원 늘었으니 나의 수익률은 10%에 불과합니다. ROE 10%, PBR 1배짜리 주식에 투자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회사가 첫해의 20억을 배당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했고 여전히 ROE 20%를 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단 나는 받은 배당이 없으니 재투자를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재투자는 회사가 이미 했습니다.
회사의 자기자본은 100억에서 120억으로 늘었습니다. ROE 20%를 유지했다면 두 번째 해의 순이익은 24억이 됩니다. 이 24억을 전액 배당한다면 내가 받을 배당금은 얼마가 되지요? 짜잔, 2.4억이 됩니다.
회사는 잉여금을 유보했고, 두 번째 해에 나에게 들어오는 현금흐름은 첫해(에 들어올 수 있었던) 현금흐름에서 20% 증가했습니다. 회사의 ROE만큼 내가 받을 이익이 늘어난 거죠.
워런 버핏은 1977년 〈포춘〉의 기사에서 “이익잉여금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자본주의의 경이로움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익잉여금이야말로 복리 성장의 핵심 요소입니다.
우리는 ‘복리의 마술’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 복리가 창출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순수하게 복리라는 공식만 놓고 보자면, 예금에만 돈을 넣어도 복리로 늘어나기는 합니다. (그 수익률의 폭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기도 버겁다는 게 문제죠.) 숱한 ‘리딩방’ 등에서도 “매월 30% 복리의 마술을 누리세요”따위의 광고를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도망가세요.)
연 10% 이상의 ‘의미 있는’ 복리를 ‘실제로’ 창출해나가는 현상을 목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내부 유보를 통한 재투자’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발견할 수 있는 ‘실제’ ‘의미 있는’ 복리 성장 사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