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4]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
매일매일 시장 참여자들에게 외치고 싶은 한 문장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제발.”
상당한 과장이 들어간, 그러나 진심을 듬뿍 담은 이야기입니다. 좀 더 건조하게 표현하자면 이렇겠죠.
“당신이 시장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은 성과를 올릴 확률이 월등히 높습니다. 물론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게 낫다’라고 생각하는 게 안전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투자 환경은 늘상 무언가를 하도록 부추깁니다. 무언가를 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아니 자주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주식의 가장 중요한 속성
앞에서 했던 이야기들부터 복습해봅시다. 주식의 가장 강력한 속성이 무엇이었죠? 네. ‘이익잉여금의 내부 유보를 통한 성장’입니다. 용어가 어려워서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억해두셔도 됩니다.
“주식은 알아서 무언가 하는 자산이다.”
주식은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해서 자가증식을 하는(혹은 쪼그라드는) 유일한 금융자산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가증식의 한계는 이론적으로는 없으며, 복리로 성장할 수 있고, (최대 손실은 100%이기 때문에) 손실 대비 이익의 폭이 훨씬 큰 비대칭 자산입니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죠. 1) 회사가 나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것과, 2)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방법입니다.
흔히들 1)은 배당수익, 2)는 매매차익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배당수익은 1)의 아주 일부분만을 반영할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회사는 언젠가는 모든 재산을 청산하여 주주에게 분배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그 언젠가 주주에게 배당할 몫을 계속해서 불려나가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그 크기가 (보통은) 당장의 배당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크고, 투자자들은 그때그때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그 크기를 평가하기 때문에 주식의 가격은 큰 폭으로 널뜁니다.

1)에 대한 기대감이 2)에 반영되기 때문에 1)과 2)는 근본적으로 같은 겁니다. 그러나 실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서, 1)에 집중하느냐 2)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시장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특정 회사의 투자자 전체로 보았을 때, 투자자 전체가 버는 돈은 회사가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몫을 넘어설 수 없고, 그 몫은 당연히 회사의 순이익에 기반합니다. (현금흐름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회사의 설립부터 청산까지 고려했을 때 순이익과 현금흐름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특정 A 회사의 투자자가 해야 할 판단은 A 회사의 순이익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집중되어야겠지요. 이게 1)에 집중한 의사결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2)를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요. A 회사가 투자자에게 벌어줄 돈이 총 1,000억이라면, 투자자 전체가 가져갈 돈의 총액은 1,000억을 넘지 못합니다.
그런데 투자자들 사이에서 그 1,000억이 어떻게 배분될 것이냐를 따져보면 문제가 상당히 흥미로워집니다.
열 명의 투자자가 지분을 10%씩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100억씩을 가져갔을 겁니다. (거기서 세금과 수수료를 냈겠죠.)
열 명의 투자자가 지분을 10%씩 가지고 시작한 다음 서로 간에 사고팔기를 무진장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는 1,000억 혹은 그 이상을 벌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투자자는 200억을 벌 수도 있겠지만 100억 미만, 혹은 손실을 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 경우 투자자 전체의 이익 합계는 1,000억에 훨씬 못 미칩니다. 세금과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몫이 첫 번째 경우보다 훨씬 많거든요.
주식은 알아서 무언가 하는 흥미로운 자산이고, 알아서 무언가를 잘했을 때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자에게 벌어줄 수 있는데, 투자자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서’ 그 몫을 가져갈 수 있었다가, ‘무언가를 열심히 함으로써’ 그 몫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립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정 가득한 행위가 이기는 게임을 지는 게임으로 바꾸어버리는 거죠.
복리 게임
위의 예시가 당장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주가는 매일매일 변하고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옆자리의 투자자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상당히 멍청해 보입니다.
우리가 똑똑해 보이려고 투자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런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똑똑해 보이는 것보다는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주식은 복리로 성장할 수 있는 자산입니다. 그러나 복리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대략 7년 정도면 복리와 단리의 유의미한 격차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최소 3년은 지나야 복리와 단리의 격차가 생깁니다.
어떤 주식을 한 번 사서 팔기까지를 한 회의 게임이라고 본다면, 이 게임의 타임라인은 최소 3년에서 넉넉잡아 7년 정도로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길게 보유하기만 한다고 반드시 승리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 기간이 지나야만 내가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는지가 (상대적으로) 그나마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기업을 분석하고 매크로를 연구하고 수급을 따지는 일의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복리 게임’을 하고자 하는 거라면, 한 번 매수할 때 ‘이 주식은 최소 3년 이후에 팔겠다’라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섣불리 확보했던 물량을 계속 청산해버리기를 반복한다면, 그런 식으로 10년씩 투자하더라도 그 10년 사이에 ‘복리 게임’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게 됩니다.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장기 투자만이 투자의 유일한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실력과 피드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인의 어깨》 1권에 적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뛰어들어서 실력을 쌓고자 한다면, 어떤 행위를 했을 때 그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구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못한 건 교정하고 잘한 건 살리면서 차츰차츰 실력이 쌓여나가는 거죠.
3년 이내의 짧은 게임에서는 (어떤 게임을 막론하고) 노이즈가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결과를 보더라도, 수익을 보았든 손실을 보았든, 내가 무엇을 잘해서 수익이 났고 무엇을 못해서 손실이 났는지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심지어 잘했는데 손실이 날 수도 있고, 못했는데 이익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반복될수록 잘못된 학습이 쌓여가는 거죠.
주식을 10년 20년 했음에도 얼토당토않은 세계관에서 자기만의 아집에 빠져 있는 사람을 우리는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피드백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을 해보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고 그 결과를 통해 학습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매일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매일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입니다.
시장은 계속 우리를 충동질합니다. 방송, 영상, 블로그, 메신저, 단톡방 등 수많은 매체에서 새로운 이슈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그에 반응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요. (…)
저는 운좋게도 주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대를 가야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경험’을 초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당시만 하더라도 매일매일 주가를 확인했었거든요. 훈련소 마지막 무렵에 우연히 신문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득달같이 증시 페이지를 펼쳐서 주가부터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차이나 쇼크’라면서 주가가 엄청 빠지던 시절이었는데요. 만약 행동이 자유로웠다면, 덜덜 떨면서 주식을 팔아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하.
물론 당시에 번 돈의 상당 부분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도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낼 수 있었던 건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흥미를 느끼신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아무것도 안 하기는 두렵다면,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거의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가져와서 현재 금액을 평가해보는 겁니다.
한 달 전, 6개월 전, 1년 전, 혹은 수년 전의 포트폴리오에 현재가를 넣어서 그 평가액과 현재 내 평가액을 비교해보시죠. (물론 엄밀하게 하자면 배당을 반영해야 하고, 증자나 합병 등이 있었으면 더 복잡해지긴 합니다만, 일단 한번 해보시면 재밌을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한 내 포트폴리오와 무언가를 열심히 한 내 포트폴리오 중에서 무엇의 금액이 더 큰가요? 후자가 더 크다면, 축하드립니다. 성장하고 계신 거네요. 전자가 더 크다면, 역시나 축하드립니다. ‘아무것도 안 했을 때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신 거니까요.
혹은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계좌’를 별도로 마련합니다.
어떤 주식을 100주 살 때, 그 ‘아무것도 안 하는 계좌’에 딱 한 주만 사두는 겁니다. 메인 계좌에서는 평소대로 사고팔되, 저쪽 계좌에서는 최소 3년이라는 자기만의 ‘락업’을 걸어두는 거죠. 그렇게 메인으로 매매한 계좌와 ‘아무것도 안 하는 계좌’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또 여러 가지로 묘한 생각이 들 겁니다.

여기서 내용을 좀 더 확장해가자면, 아무래도 ‘수익률 측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두 계좌 중 어느 쪽이 더 수익률이 좋으냐?’라는 것도 사실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의 올해 수익률은 얼마인가요? 투자를 시작하고서 지금까지의 연환산 수익률은 얼마인가요? 수익률을 측정해본 적이 없다면, 내가 투자를 잘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건 또 다른 중요한 주제가 될 듯하니 조만간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식시장에서는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 해보는 게 어떠실까요.
“투자자 전체로 보면, 행동이 늘어날수록 수익은 줄어듭니다.”
- 워런 버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