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섭의 거버넌스와 투자 1] 우리가 일본 주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ESG로 익숙해진 개념인 ‘거버넌스’는 ‘조직이 목표를 추구할 때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 사항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로 정의됩니다. 기업의 직원, 경영진, 이사회,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개념이지요. 우리가 기업에 투자할 때 주요 재무 수치에 매몰되거나 압도되는 일이 많지만 사실은 거버넌스가 가치평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한국 행동주의 투자자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2023년 주주제안을 통해 남양유업 감사로 선임되어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심혜섭 변호사가 이 칼럼에서 거버넌스와 투자의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 버핏클럽


나라는 기업 거버넌스에 따라서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지배주주가 ‘있는’ 나라지배주주가 ‘없는’ 나라다.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배주주가 있는 대표적 나라인 우리나라도 포스코홀딩스, KT, KT&G, 여러 금융지주사처럼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들이 있다.

이 구분은 어떤 나라를 이해할 때 중요하고 투자할 때도 매우 중요하다. 중요하기 때문에 비교회사법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투자와 연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 주로 미국에서 나오는 투자서는 지배주주가 없는 사회적 세팅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기에 설명하지 않고, 한국의 가치투자자들은 대부분 미국 가치투자서를 외우고 소화하기에도 급급해서 이 문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럼 과연 지배주주가 없는 나라가 어디냐 하면 바로 ‘미국, 영국, 일본’이다. 이들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오너, 총수, 승계 등의 개념이 없고, 그때그때 능력을 갖춘 사람이 기업을 이끄는 후계자가 되며, 심지어 설립자도 지분이 그리 많지 않아 경영을 잘못하면 쫓겨나기 일쑤다.

그렇다면 지배주주가 있는 나라는 또 어디냐 하면, 비교회사법 학자들은 위 미국, 영국,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라고 설명한다. 대체로 지배주주가 없는 나라는 자본시장이 발달했고, 지배주주가 있는 나라는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못했다. 나라의 역동성과 개방도, 투명성도 크게 차이 난다.

그래서 지배주주가 없는 나라는 계속 지배주주가 없고 지배주주가 있는 나라는 계속 지배주주가 있는가 하면 대체로 그렇다. 지배주주가 있는 나라는 그 나라의 법 제도가 꾸민 생태계가 지배주주 존속에 유리하게 되어 있기에 지배주주가 있다. 일단 어떤 사회의 생태계에 지배주주가 있으면, 그 지배주주는 자기가 권력을 행사하고 터널링(tunneling)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이 좋은 것을 아들딸에게 승계하기를 너무나 원하기에, 그 나라의 법 제도를 지배주주 존재에 유리하도록 계속 만들고 발전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개혁에 저항한다.

이걸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 경로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고의 습관 - 국어사전)’이라고 한다. 쿼티(qwerty) 키보드와 자동차 우측 통행이 경로의존성의 대표적 예다. 경로의존성을 이해하고 나면, 일단 어떤 제도가 만들어진 뒤 그 제도가 관습, 사고방식, 기득권에 영향을 미치고 그 관습, 사고방식, 기득권이 다시 제도 존속이나 강화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재벌이 있고, 총수가 있고, 그 재벌은 총수의 것이며, 총수의 2세, 3세, 4세가 승계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배주주가 범죄를 저질러도 여전히 회장으로 불리고 권력을 행사하며 감옥에 가도 옥중경영을 한다. 심지어 그 범죄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횡령이나 배임이더라도 지위에 변함이 없다. 세상 어느 나라 주주와 이사회가 자신에 대해 범죄를 일으킨 사람이 계속 경영하도록 용인하고 심지어 회장으로 보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언론에는 “(재벌 3세 이름)의 야심·꿈” 같은 찬양성 기사가 흘러넘친다.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정치와 같이 다른 영역으로 가면 제대로 눈이 뜨인다. 북한의 3대 세습을 이상하게 보고, 능력이 있든 없든 왕위를 세습했던 왕조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며, 대통령도 재임 중 범죄를 저지르면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제 영역에 들어서면 세습 체계에 위화감을 잘 느끼지 못하고 개혁할 의지도 없다. 심지어 기업에 ‘주인’이 있고 ‘오너’가 있어서 한국 경제가 이렇게 성장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일터에 나가면 말단 직원부터 대표이사까지 회장의 눈치를 보며 충성 경쟁을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특정 방식의 성공이나 대박이 발전을 가로막는 경우는 흔하다. 나는 반도체 대박의 경험이 한국 거버넌스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재벌 3세나 4세는 온실 속 화초이고, 외부든 내부든 비판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자기 객관화 능력도 없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승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들 중 누군가 똑똑하고 강인한 자가 광야에서 초인처럼 나타나 뭐라도 해줄 것처럼 기대한다.

역사를 보면 세종대왕과 강희제처럼 총명한 군주가 나타나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왕조든 혈통 중심 승계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고, 현대 선진국 중 전통적인 전제군주정을 운영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는데도 헛된 꿈을 꾼다. 당장 북한을 비판하고, 워런 버핏이나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등을 찬양하면서도 그렇다.

어쨌든 경로의존성은 단단하기에, 이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강한 사회적 충격이 필요하다. 일본이 그런 경우다. 원래 일본도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재벌이 있었고 당연히 지배주주도 있었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 등이 그런 재벌이다. 그런데 자본의 속성이라는 게 무한 확장을 추구하는 데다가 당시에는 ESG고 뭐고 없었기 때문에 이들 재벌이 군부랑 결탁해서 수많은 악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아직도 징용공 이야기가 나오고 전범 기업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맥아더가 군정을 할 당시, 일본 지배주주로부터 주식을 몰취하다시피 해서 분산된 소유구조로 바꾸어놓았다. 한국에서 했던 토지개혁을 생각하면 되는데, 지배주주의 지분을 장기국채 같은 것으로 강제 교환했다고 한다.

그럼 한국에도 미군정이 있었는데 왜 한국에는 그런 개혁이 없었느냐 하면, 당시 한국에는 자본이랄 게 없고 지배주주로부터 빼앗고 뭐고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정은 일본에서 재벌개혁을 하고 토지개혁도 했지만 한국에선 토지개혁만 했다. 오히려 한국 자본은 오히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적산(敵産) 불하를 하면서 주식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재벌의 (흑)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적산 불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일본은 이렇게 강력한 외부의 충격으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 소유구조가 만들어지자 다시는 과거처럼 주식이 집중되지 않았다. 물론 일본에서도 옛날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래서 과거 재벌들끼리 다시 단체를 만들고 상호주도 보유하고 하면서 소유구조를 집중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반대 방향으로 사회가 세팅되어 법과 제도가 불리했고(예를 들어 지주회사가 수십 년 동안 허용되지 않았다), 지분을 집중하려면 돈이 여간 많이 드는 데다가, 집중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힘이 이미 약해졌기 때문에 잘되지 않았다. 도리어 일본 정부가 상호주를 해소하라고 해서 있던 상호주도 해소하는 분위기다.

이 분산된 소유구조가 자본시장 발전에는 엄청 유리하다. 자본시장에서 공정한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면 한국 같은 나라는 재벌과 기득권의 저항이 격렬한 반면, 일본과 같이 분산된 소유구조를 지닌 나라는 논리적으로 맞으면 대충 잘 도입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버블 붕괴 후 정치권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방향성도 없었기에 수십 년 헤맸지만, 최근 수년간의 노력으로 자본시장의 구조를 개혁하자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주 민관 합심해서 잘하고 있다. 지금은 엔화도 싸고, 대충 쉽게 여행 가서 라멘을 싸게 먹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된다. 유튜브를 보면 ‘일본 망했다, 중국 망했다’ 등의 동영상도 많아 얕보는데, 중국은 실제로 너 나 할 것 없이 자본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이기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본은 매력적인 자본시장을 만들어놓았고 버핏 옹 포함 전 세계의 자본이 모이는 중이기에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

닛케이지수와 코스피지수 비교(2019~2024)

자본의 방향성을 보면 한국 자본시장은 아무도 주주의 돈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지 않고, 외국인은 투자를 늘리지 않으며, 한국 사람들도 서학개미니 코인이니 하며 있는 자본도 빠져나가는 형국이기에 암울하다. 한국 사람의 코인 투자 비중이 높은 것은 한국 자본시장의 매력도가 코인보다도 못하다는 현실을 방증한다.

투자할 때는 대충 직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엄중히 따져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그간 일본의 경제 발전 방향을 대충 따라갔고, 일본과 이웃해 있으며, 문화도 그나마 가장 비슷하니 일본과 비슷하다고 착각하곤 한다. 일본의 거버넌스 개혁이 아베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으니 한국도 시간이 흐르면 비슷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배주주가 있고 없고의 구조’ 자체가 다르기에, 일본처럼 자본시장을 개혁하기는 솔직히 좀 어렵다.

사실 서학개미 대부분이 지배주주가 있고 없고의 ‘구조적 차이점’을 알고 미국에 투자해서 돈을 번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구조’에서 나오는 ‘현상’, 즉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과 같이 주주환원이 잘 이루어지고 주주를 주주답게 대우하는 현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했고,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했던 것에 비해 많은 돈을 벌었다.

반면에 나처럼 PBR 0.2, 0.3 심지어 PBR 0.1대의 자극적인 숫자에 매몰되어 한국만큼 저평가 가치주가 많은 매력적인 시장이 없다고 생각한 가치투자자들은 수년째 PBR 0.2, 0.3에 주식을 사서 PBR 0.4만 되어도 고평가라며 주식을 파는 어처구니없는 투자나 계속할 뿐이다. 그나마 PBR 0.4가 되어 돈을 벌면 다행이고 PBR 0.1로 하락하면 큰 자본 손실을 입게 되는데, 주주를 보호하지 않는 기업은 주가의 하방을 알 수 없기에 PBR 0.1 혹은 그 이하로 하락하는 것도 충분히 각오하고 더욱 보수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나는 평소 신체적인 이민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본의 이민은 가능하며,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 개혁이 늦어진다면 투자자 개인으로서는 불가피하게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환전도, HTS나 MTS에서의 매매도 너무나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 클릭 한 번이면 상당한 정확도로 외국어를 번역할 수 있기에 언어의 장벽도 크지 않다.

출처: 2023년 헤르메스 리포트(Jonathan Pines, Lead Portfolio Manager, hermes-investment)

2023년 말 헤르메스(Federated Hermes Limited)가 발간한 “South Korea - enough is enough”라는 리포트는 언론에도 나오고 큰 화제가 되었다. 대체로 많은 이가 이 리포트를 요약한 기사만 보거나, 리포트를 읽더라도 본문만 읽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이 리포트의 각주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일본에서 주가가 PBR 1 이하로 형성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다수 한국 기업들처럼, 지배주주가 주가가 낮게 유지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일본의 기업들은 1999년 버블 붕괴를 경험한 이후 기업의 사고방식에 생존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편향이 깃든 데다가 오랫동안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자산수익률 자체가 낮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PBR이 낮은 것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엔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기업도 거의 없다. 게다가 호라이즌 키네틱 일본 재단의 연구에 의하면, 이들 기업의 성과는 일본 MSCI 벤치마크를 4% 정도 앞섰다.

위 각주를 통해 아직 일본에는 PBR 1 미만에 거래되는 기업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과, 일본 기업들은 억지로 지배주주가 주가를 누르지 않기에 주가가 상승하기 훨씬 좋은 환경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닛케이지수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이는 일본 정부와 도쿄거래소 스스로 노력하고 그런 노력에 호응해 일본 기업이 스스로 개선하거나 일본 국내외 행동주의자들이 압박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향식 개혁이다. 일본 국민은 아직 보수적이다. 이런 식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면 지수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가총액 상위주들 위주로 제 가치를 찾게 된다. 다시 말해 지수가 오른 것에 비해 덜 오른 종목이 많고, 특히 지수에서 비중이 높지 않은 중소형주 중에는 아직 기회가 많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다트(https://dart.fss.or.kr)와 유사한 전자공시사이트인 일본의 에디넷(https://disclosure2.edinet-fsa.go.jp)은 다트와 쌍둥이처럼 닮았고 사용하기 어렵지 않다.


일단 첫 번째 글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거버넌스와 투자를 연결하는 관점에서 글을 쓸 계획이니 여러분의 투자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