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단상] 주주 환원 없는 기업과 동행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시장의 난무하는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기본에 집중하고 올바른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투자 단상’은 현직 펀드매니저가 시의적절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투자 대가들이 역경을 이겨낸 방법도 소개하고 실패 사례에서 배우는 기회도 마련하겠습니다.  ― 버핏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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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밸류업’이 유행입니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의 주주환원을 통해 저평가를 모면해보려는 기업들에 붙여진 이름이죠. 일본에 이어 한국 또한 일반 주주들과 정부의 압박으로 ‘밸류업’ 정책을 내놓는 기업이 많아졌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대표적인 ‘밸류업’ 섹터라고 한다면 금융주를 들 수 있을 텐데요. 과거 오랜 관치금융과 성장성의 한계로 말도 안 되게 저평가받아오던 상황에서 ‘밸류업’ 열풍과 함께 주가가 많이 뛰었습니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업에 투자된 자본 대비 높은 수준의 이익을 계속 내줘야 합니다. 성장률이 높을 때는 추가 투입되는 자본 대비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크기 때문에 가치가 더 증가합니다. 그러나 성장이 정체되면 이익 성장보다 자본 증가가 더 커집니다. 흔히 얘기하는 ROE가 내려가는 거죠.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향후 성장이 정체될 것 같으면, 과거 아무리 화려한 기록을 보여줬더라도 주가에 대한 평가가 야박해집니다. 그대로 가면 투하되는 자본 대비 이익의 수준이 계속 낮아질 게 자명하니까요.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밸류에이션이 낮아집니다. 심지어 성장을 보여주더라도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자본이 쌓이는 속도를 대폭 줄이는 조치를 취한다면 시장은 미래의 ROE에 대해 낙관하게 됩니다. 저성장하는 이익 대비 자본이 늘어나는 속도를 낮춰버리니 당연히 ROE가 올라갈 수밖에 없겠죠. 떄문에 주주친화적인 기업들은 배당으로 자본에 쌓이는 이익의 규모를 줄이거나,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아예 자본을 감소시켜버리고, 그렇게 주식의 가치를 끌어올립니다.

물론 가장 좋은 케이스는 추가 성장의 기회를 발굴하여 커가는 것일 겁니다. 기업도 좋고, 추가로 고용이 창출되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주주도 좋아지는 그림이죠. 그러나 모든 사업이나 기업들이 이런 아름다운 상황을 맞이하지는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이익을 더 늘리는 데 집중하거나, 자본을 감소하는 데 집중하거나 모두 궁극적으로는 ‘효율적인 자본배치’를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야 가치가 상승하고, 그런 가치 상승을 주가가 반영해주는 거죠.

가치투자자들은 천성적으로 낮은 밸류에이션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절대적인 수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낮다’는 기준 자체는 공유합니다. 문제는 그런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평가받는 기업들은 미래 성장성이 낮아질 것을 시장이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물론 해당 기업이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느라 성장이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좋은 투자 기회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낮은’ 밸류에이션이 유지되거나 ROE가 더 낮아지는 상황이 오면 ‘더욱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침전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가치함정’이라고 하죠.

만일 이런 상황에서 주주친화적인 전략을 쓴다면, 그 수준에 따라 시장은 ROE의 방향성을 위로 보게 되고 이는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으로 귀결됩니다.

‘성장’만 보는 투자자들이 볼 때는 ‘성장’ 요소가 바뀌지 않았는데 주가가 오르는 이상한 현상이 펼쳐지는 것이죠.

기업과 오랜 기간 ‘동행’을 추구함으로써 낮은 리스크의 높은 수익을 원한다면, 주주친화적인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설령 주가가 좀 높은 상황에 진입하더라도, 성장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주가를 상당히 방어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 환경이 다시 우호적으로 바뀌거나, 기업이 오랜 기간 준비해온 성장을 실현해준다면, 투자자는 ‘동행’의 대가로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됩니다.

워런 버핏의 ‘애플’ 투자가 정확히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옥시덴탈’을 공격적으로 매수한 논리도 위와 같습니다.

물론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ROE의 방향성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금리 수준이나 기타 정성적인 평가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도 점점 ‘밸류업’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런 기업이 많아져서 오랜 시간 좋은 기업과 함께하고자 하는 많은 투자자가 좋은 보상을 얻는 선진시장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