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주식 공부 18] 싸게 살 수 있는 기회
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주가가 폭락하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싸다’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차치하고라도(지난 글 ‘‘싸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라며 허겁지겁 매수에 나섰다가는 더 싸지기만 하는 가격을 보며 망연자실할 때가 많죠.
오늘은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맞는지 추론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싸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글 ‘‘싸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에서 ‘싸다’의 여러 정의를 말씀드렸는데요, 그중에서 첫 번째, 적정 가치보다 싸다는 뜻으로 쓰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의를 좀 더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정 가치라는 말은 그 말 자체로 많은 오류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싸다’의 개념은 ‘투자자의 잠재적 투자 시계(time horizon) 내에서 평균 대비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확률이 높은 상황’으로 정의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투자자가 B라는 주식에 3년가량 투자할 계획이라고 하면, B 외의 다른 주식에 투자할 때 평균 연환산 10%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B 주식에 대해서는 연환산 17%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정의에 들어간 각 단어들을 꼼꼼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싸게 샀다’라고 해서 ‘오늘이 바닥이다’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내가 ‘싸게 샀다’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만 원이라고 생각한 물건을 오천 원에 사면 싸게 산 걸까요? 내 판단이 틀렸다면요? 천 원짜리를 오천 원에 비싸게 샀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맞을 가능성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남이 틀릴 가능성을 논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내가 싸게 사는 상황일 확률이 높으려면 남들이 싸게 파는 상황인지를 검토해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헐값에 팔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조급함
협상의 가장 기본은 여유입니다.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는 여러 기술이 필요한데요.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게임은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옵션이 많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바와 내줄 수 있는 바 - 소위 내려놓을 수 있는 ‘카드’ - 가 무엇인지를 상대방이 가능한 한 몰라야 하고, 상대방이 가진 옵션들의 비용이 높아져야 합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카드를 내려놓도록 하는 게 정석이고, 내가 먼저 카드를 내려놓을 때는 가능한 한 강하게, 그러나 상대방이 테이블에서 일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던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정도로 너무 궁지에 몰면 안 되지만, 나는 언제든지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상대에게 자각시켜줍니다.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는 좋은 협상이었다며 상대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죠.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수 있는 자’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언제든 딜을 거부할 수 있고 상대는 이 딜을 성사시켜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이기고 시작한 게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이미 지고 시작하는 게임이죠. 버핏은 ‘타인의 호의에 의존하는 삶’은 매우 괴로운 삶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내가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즉 이 협상에 어떻게든 응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내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겠죠. 당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지금 협상에서 무언가를 ‘빨리’ 끝내야만 정말 중요한 다음 사안에서 조금이라도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금융시장으로 돌아옵시다. ‘가격 무관’하게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은 언제일까요?
가장 쉽게 떠오르는 케이스는 레버리지입니다. 담보로 잡은 물건의 가격이 급락하여 반대매매가 될 경우에는 투자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즉 어떤 가격이든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매도가 들어갑니다. 담보 가치 하락이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A 자산을 매수하면서 담보로 B 자산을 잡아놨는데, B의 가격이 하락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보유한 자산, 즉 A의 가격이 하락하면 전체 재무 구조에서 레버리지 비율이 대폭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높은 부채비율이 부담스럽다면 A를 매각하라는 압박이 본인 스스로 혹은 주변으로부터 들어올 수 있습니다.
주가 폭락의 끝에서는 높은 빈도로 신용매매의 급락이 나옵니다. 레버리지를 낀 베팅이 많았다면 상승 탄력이 좋은 만큼 하락 탄력도 좋겠죠. 레버리지를 껴서 주식 매수를 한다 함은 기본적으로 해당 자산을 장기간 보유할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장기간 보유할수록 이자비용이 계속 나가니, 이자비용을 월등히 뛰어넘을 수 있는 가격 급등을 예상하는 짧은 구간만 매매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신용거래를 합니다. (그 판단이 실제로 얼마나 옳은지는 별개로 하고요.)
신용거래를 하는 사람은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 민감해집니다. 본인의 순자산가치 변동 폭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특정 가격 이하로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강제로 포지션을 청산당해버리니까요. 원금 대비 몇백 퍼센트를 벌었더라도 단 며칠 만에 재산이 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용으로 매수한 주식이 많은 상황에서 주가 급락은 매도를 부르고, 매도는 주가 하락을 부르고, 주가 하락은 다시 신용거래 청산 - 매도를 부릅니다. 이 메커니즘에서 가격이 ‘싼지 안 싼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즉 ‘헐값이라도 파는’ 상황이 됩니다.
심리적인 조급함도 금융시장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전쟁이 났다, 미사일을 쐈다, 누군가 살해당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 전염병이 돈다 등등 광범위하게 충격을 주는 이벤트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 존재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신뢰를 가지고 거래하고, 각자의 권리가 보호받고 약속이 이행되는 환경에서 금융시장이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지속가능하다는 믿음을 무너트려버리는 이슈가 발생하면, 누구든 매도를 한 번쯤 고려해볼 테고, 그중 상당수는 실제로 매도 버튼에 손이 나가겠지요.
물론 이런 거시 이벤트에서 매도하는 게 늘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이 무너진다면, 당연히 그 위에 있던 모든 자산의 가치는 0이 되겠지요. 여기서 좀 더 정교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세상이 무너질’ 이슈인가. 지금 매도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숙고하고 매도 버튼을 누르는 것인가. 여기서 앞서의 ‘물리적인’ 조급함, 즉 레버리지를 끼었기 때문에 단기간의 가격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면, 현재의 급락이 과장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에도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격이 한참 급락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어디까지 빠질지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득 반등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가격만 오르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때 여러 매체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펀더멘털 측면에서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 상승은 잘못되었다, 2차 하락이 있다, 지금은 눈에 띄지 않아도 오늘의 충격이 몇 개월 후의 경기침체로 나올 수 있다 등등.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저는 안심합니다. 시장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시장은 원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먼저 반등하고 실제 펀더멘털 변화는 뒤따라옵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요. 매체에서 우려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의 추종자가 많다면, 아직 우려가 더 많다는 뜻이고, 손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상황이 좋아지면 가격이 급등할 여지는 많고,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추가 하락 폭은 (잠재 상승 폭 대비) 작다는 뜻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특히나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 플레이어 - 본인의 신뢰 혹은 대부분의 재산을 걸고 실제 베팅에 나서는 자 - 가 아니라 ‘말로써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말해야 하고, 그들의 말은 가능하면 자극적인 게 좋고, 희망보다는 공포를 자극하는 게 오래 살아남기에 유리하니까요.
정보 부족(혹은 정보 과다)
어떤 지역의 개발 정보를 비밀스럽게 입수해서 그 지역의 부동산을 사러 갔다고 해봅시다. 지역 주민들은 아직 그 소식을 전혀 못 들은 상황입니다. 몇 달 전부터 나와 있던 어떤 매물이 있습니다. 최근에 호가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입수한 정보가 맞다면, 이 매도자는 적정 가격보다 싸게 나에게 물건을 넘기는 게 되겠지요. 이런 상황을 정보 비대칭이라고 부릅니다.
정보가 많으면 기본적으로 좋은 가격에 거래하는 데 유리하겠지요. 그래서 수많은 투자자는 오늘도 ‘새로운 정보’ ‘비밀스러운 정보’ ‘고급 정보’ ‘선행지표’를 찾아다닙니다. 혹은 ‘깊이 있는 분석’으로 포장되기도 하지요.
부동산에서는 저런 거래가 가능하겠지만 주식시장에서는 글쎄요. 일단 법적으로는 차단되어 있습니다.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으면 불법입니다. 실제로 처벌받냐고요? 예, 받습니다. 한국에서는 10년쯤 전 H 제약사 관련하여 미공개 정보로 이익을 얻은 투자자들이 대거 처벌된 사례가 있습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투자자라면 미공개 정보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미공개 정보는 알려주지도,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공개된 정보들을 종합해서도 기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요즘의 투자자들은 상당히 똑똑합니다. 사용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요. 본인의 생활 주변에서, 지인들로부터, 협력사, 경쟁사들로부터 얻은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을 조합해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건 ‘모자이크’라고 불리는, 오히려 권장되는 우아한 스킬입니다. 이쯤 되면 ‘정보’가 아니라 ‘통찰’이라고 불러야겠지요.
‘미공개 중요 정보’와 ‘공개된 정보들을 종합한 통찰’, 그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공개되는 정보(이를테면 공시된 재무제표)는 아닐지라도 수출 트렌드, 구글 트렌드, 틱톡 트렌드, 아마존 매출 순위, 올리브영 매대 위치와 규모 등 누구나 노력하면 알 수 있는 정보이지만, 다시 말해 ‘노력해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 그 회색 지대에 위치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정보들을 조합해서 ‘추론’과 ‘통찰’로 옮겨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단기적인 주가 변동 예측을 좋아하고, 특정 정보와 가격 변동 간에 일대일 매치가 있을 거라는 가설을 은연중에 깔고 있습니다. 이번에 A 제품이 올리브영에서 1위를 했으니 사자. 이번에 유가가 상승해서 물류비가 올랐으니 팔자. 이런 식이죠.
미공개 중요 정보를 심각하게 규제하는 것은 그 하나의 정보가 주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미공개 중요 정보가 아닌 정보들은 개별 건으로 주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뜻이죠.
즉 ‘정보를 많이 파악한다고 해서 내 승률이 높아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꼭 그렇지는 않다’라는 게 여러 연구 결과로 밝혀졌습니다. 반면에 정보를 많이 파악하면 본인의 승률에 대한 자신감은 높아집니다. 오히려 더 위험해지는 거죠.
주식시장에서 남들이 다 아는 정보도 모른 채로 매매에 나서면 당연히 불리한 게임이 되겠지만요, 남들이 잘 모르는 정보를 내가 이만큼이나 파악했다고 해서 유리한 게임이 될 거라는 생각도 상당히 위험합니다.
수출 데이터는 이제 한국에서 일종의 공공재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품목코드와 지역을 조합해서 10일 단위로 수출 금액을 파악하는 기법은 한때 각광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기업의 매출액을 ‘미리’ 추정할 수 있는 그럭저럭 용이한 지표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선행지표’를 발견했다 한들, 돈을 버는 건 조금 별개의 문제입니다.
수출 데이터가 9월까지 좋았다가 10월 10일에 꺾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꺾였으니까 팔자? 여기에는 계절적인 요인이 있는지, 다른 정책 변수가 작용했는지, 이전 달에 일회성 요인이 있었다가 사라진 건지 등등을 파악하는 게 정석이겠죠. 곧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서 지난달에 미리 물건을 넘겼고 이번 달은 그 반작용으로 줄어든 거라면 나쁜 거겠죠. 10월이 물건이 많이 팔리는 달이라 9월에 미리 선적을 많이 했다면 10월에 꺾이는 건 나쁘게 볼 필요가 없겠죠. 이번에 새로운 유통망을 뚫어서 채널 재고(유통망 재고)를 쌓느라 수개월 치를 한 번에 가져가서 지난달 수출이 많았다면 이번 달에 꺾이는 건 자연스럽죠. 그리고 앞으로도 몇 달간은 꺾이는 추세가 될 거라고 전망할 수 있죠. (그걸 좋게 보고 버틸지, 나쁘게 보고 팔았다가 나중에 다시 살지는 각자의 판단이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판단력이지, 정보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판단 오류
‘싸게 팔았다’라는 건 그 자체로 판단 오류이니 3절의 제목은 동어 반복으로 여겨질 소지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판단 오류란, 어떤 정보들로부터 매도 의사결정을 하기까지의 논리 전개 과정에 합리적이지 않은 논리가 끼어든 상황을 지칭합니다.
앞서 1, 2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간에 쫓기고, 가격에 쫓기고, 감정에 눌리고, 정보가 부족하고, 혹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득함에 따라 자신감이 과도해져 판단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인간이 으레 가지는 심리적 오류, 인지 편향 등은 수시로, 거의 매일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끼칩니다.
사실 인간이 하는 의사결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인 과정이고, 이미 정답이 결정되어 있고, 의식이 하는 역할은 무의식이 해놓은 결정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오류를 원천적으로 다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본적으로 위의 1, 2번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레버리지를 덜 쓰고, 쓰더라도 원하지 않는 시기에 강제로 청산당하지는 않는 구조로 써야겠죠. 오늘 아침에 일어난 새로운 이벤트로 어제는 하지 않았을 결정을 한다거나, 어제 했어야 할 결정을 오늘 정답지를 보고 오늘 뒤늦게 해버리는 일도 막아야겠습니다.
판단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좋은 방법으로는 의사결정을 기록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식하는 마음》에 잘 적어놨으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정보 과잉의 함정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으로도 역시 내가 득한 정보들을 쭉 나열해놓고 검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보가 물리적인 외부 공간에 나와 있으면 내 머릿속에 있을 때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내 의견과 반대되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거기에 맞게 근거를 재구성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의식이 무의식중에 무의식을 따라간다면 오히려 그걸 역으로 이용하는 거죠. 상당히 재밌습니다. (‘사전 부검’이라고 불리는 방법입니다. 역시나 《주식하는 마음》에 적어놓았습니다.)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고,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들의 주가가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한국이 그러하지요. 실제로 트럼프 1기 시기에 교역량이 늘었고 오히려 바이든 정부 때 줄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진 않았습니다만, 많이들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의 화장품회사들이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면서, 가성비에 의존하던 K-뷰티의 시대는 끝났다고 판단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화장품 수출 실적도 기대에 못 미치면서 ‘드디어 그날이 왔다’며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ODM사 공급 부족 → 브랜드사의 선주문 → 채널 재고 소진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묵살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기서 주식을 판 사람들이 정말 틀렸는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각자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논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저들이 틀렸다면, 혹은 내가 틀렸다면, 그 틀림이 언제 어떤 형태로 판명되는지(즉 각자의 주장이 어떻게 반증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겁니다.
트럼프 1기 때 교역량이 늘었다, 현재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도 일단은 카드를 던진 거다, 그리고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마음대로 강행하기도 어렵다, 라고 주장한다면, 이 주장은 취임 이후 실제 관세 부과, 의회의 승인, 교역량 감소 등의 이벤트가 일어남으로써 반증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때는 내가 틀렸으니 포지션을 철수하면 됩니다.
K화장품을 여전히 좋게 본다면 이런 논리가 있겠죠. 소비재에 관세를 부과하는 건 물가 상승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렵다. K화장품은 가격이 좋기 때문에, 관세를 부과해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미국 소비자의 지갑이 가벼워질수록 더 각광받을 수 있다. 실적 부진은 채널 재고에 따른 일시적인 이슈다. 이 주장이 ‘틀리려면’ 실제 관세가 부과되고, 한국 화장품의 점유율이 실제로 줄어들고, ODM사의 캐파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더디게 늘어난다거나 하는 이벤트를 관측되어야겠죠.
중요한 건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맞았을 때 버는 돈이 틀렸을 때 잃는 돈보다 큰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맞고 틀리고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겸손해야지요. 내가 아무리 맞더라도 주가는 반대로 갈 수 있습니다. 천 명의 투자자가 틀린 전망을 하고 주식을 팔았고, 그들이 틀린 것으로 드러난 이후에도 재매수를 하지 않으면, 결국 손해는 나에게 귀속됩니다. 내가 이 한 주식만 가지고 있고, 어느 시점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요.
역시나 예측의 정확성보다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결론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좋은 구조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 하나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평온한 한 해 만들어나가시기 바랍니다.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