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가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을 담아 ‘최소한의 주식 공부’를 연재합니다. 주식이라는 자산의 근본적인 실체에서 시작해, 의사결정의 주요 원칙과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가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합니다. ― 버핏클럽
주가가 폭락하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싸다’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차치하고라도(지난 글 ‘‘싸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라며 허겁지겁 매수에 나섰다가는 더 싸지기만 하는 가격을 보며 망연자실할 때가 많죠.
오늘은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맞는지 추론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싸다’는 개념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글 ‘‘싸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에서 ‘싸다’의 여러 정의를 말씀드렸는데요, 그중에서 첫 번째, 적정 가치보다 싸다는 뜻으로 쓰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의를 좀 더 정교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정 가치라는 말은 그 말 자체로 많은 오류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싸다’의 개념은 ‘투자자의 잠재적 투자 시계(time horizon) 내에서 평균 대비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확률이 높은 상황’으로 정의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투자자가 B라는 주식에 3년가량 투자할 계획이라고 하면, B 외의 다른 주식에 투자할 때 평균 연환산 10%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B 주식에 대해서는 연환산 17%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정의에 들어간 각 단어들을 꼼꼼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싸게 샀다’라고 해서 ‘오늘이 바닥이다’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내가 ‘싸게 샀다’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만 원이라고 생각한 물건을 오천 원에 사면 싸게 산 걸까요? 내 판단이 틀렸다면요? 천 원짜리를 오천 원에 비싸게 샀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맞을 가능성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남이 틀릴 가능성을 논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내가 싸게 사는 상황일 확률이 높으려면 남들이 싸게 파는 상황인지를 검토해보는 게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헐값에 팔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조급함
협상의 가장 기본은 여유입니다.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는 여러 기술이 필요한데요.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게임은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옵션이 많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바와 내줄 수 있는 바 - 소위 내려놓을 수 있는 ‘카드’ - 가 무엇인지를 상대방이 가능한 한 몰라야 하고, 상대방이 가진 옵션들의 비용이 높아져야 합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상대방이 먼저 카드를 내려놓도록 하는 게 정석이고, 내가 먼저 카드를 내려놓을 때는 가능한 한 강하게, 그러나 상대방이 테이블에서 일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던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정도로 너무 궁지에 몰면 안 되지만, 나는 언제든지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상대에게 자각시켜줍니다.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는 좋은 협상이었다며 상대를 칭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죠.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수 있는 자’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언제든 딜을 거부할 수 있고 상대는 이 딜을 성사시켜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이미 이기고 시작한 게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이미 지고 시작하는 게임이죠. 버핏은 ‘타인의 호의에 의존하는 삶’은 매우 괴로운 삶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내가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즉 이 협상에 어떻게든 응해야만 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요? 내가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겠죠. 당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지금 협상에서 무언가를 ‘빨리’ 끝내야만 정말 중요한 다음 사안에서 조금이라도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금융시장으로 돌아옵시다. ‘가격 무관’하게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은 언제일까요?
가장 쉽게 떠오르는 케이스는 레버리지입니다. 담보로 잡은 물건의 가격이 급락하여 반대매매가 될 경우에는 투자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즉 어떤 가격이든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매도가 들어갑니다. 담보 가치 하락이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A 자산을 매수하면서 담보로 B 자산을 잡아놨는데, B의 가격이 하락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보유한 자산, 즉 A의 가격이 하락하면 전체 재무 구조에서 레버리지 비율이 대폭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높은 부채비율이 부담스럽다면 A를 매각하라는 압박이 본인 스스로 혹은 주변으로부터 들어올 수 있습니다.
주가 폭락의 끝에서는 높은 빈도로 신용매매의 급락이 나옵니다. 레버리지를 낀 베팅이 많았다면 상승 탄력이 좋은 만큼 하락 탄력도 좋겠죠. 레버리지를 껴서 주식 매수를 한다 함은 기본적으로 해당 자산을 장기간 보유할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장기간 보유할수록 이자비용이 계속 나가니, 이자비용을 월등히 뛰어넘을 수 있는 가격 급등을 예상하는 짧은 구간만 매매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신용거래를 합니다. (그 판단이 실제로 얼마나 옳은지는 별개로 하고요.)
신용거래를 하는 사람은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 민감해집니다. 본인의 순자산가치 변동 폭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특정 가격 이하로 기초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강제로 포지션을 청산당해버리니까요. 원금 대비 몇백 퍼센트를 벌었더라도 단 며칠 만에 재산이 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용으로 매수한 주식이 많은 상황에서 주가 급락은 매도를 부르고, 매도는 주가 하락을 부르고, 주가 하락은 다시 신용거래 청산 - 매도를 부릅니다. 이 메커니즘에서 가격이 ‘싼지 안 싼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즉 ‘헐값이라도 파는’ 상황이 됩니다.
심리적인 조급함도 금융시장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전쟁이 났다, 미사일을 쐈다, 누군가 살해당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 전염병이 돈다 등등 광범위하게 충격을 주는 이벤트를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 때 존재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신뢰를 가지고 거래하고, 각자의 권리가 보호받고 약속이 이행되는 환경에서 금융시장이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지속가능하다는 믿음을 무너트려버리는 이슈가 발생하면, 누구든 매도를 한 번쯤 고려해볼 테고, 그중 상당수는 실제로 매도 버튼에 손이 나가겠지요.
물론 이런 거시 이벤트에서 매도하는 게 늘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이 무너진다면, 당연히 그 위에 있던 모든 자산의 가치는 0이 되겠지요. 여기서 좀 더 정교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세상이 무너질’ 이슈인가. 지금 매도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숙고하고 매도 버튼을 누르는 것인가. 여기서 앞서의 ‘물리적인’ 조급함, 즉 레버리지를 끼었기 때문에 단기간의 가격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면, 현재의 급락이 과장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에도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격이 한참 급락하고 대다수의 사람이 어디까지 빠질지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득 반등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가격만 오르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때 여러 매체에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펀더멘털 측면에서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 상승은 잘못되었다, 2차 하락이 있다, 지금은 눈에 띄지 않아도 오늘의 충격이 몇 개월 후의 경기침체로 나올 수 있다 등등.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저는 안심합니다. 시장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시장은 원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먼저 반등하고 실제 펀더멘털 변화는 뒤따라옵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요. 매체에서 우려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의 추종자가 많다면, 아직 우려가 더 많다는 뜻이고, 손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상황이 좋아지면 가격이 급등할 여지는 많고,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추가 하락 폭은 (잠재 상승 폭 대비) 작다는 뜻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특히나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 플레이어 - 본인의 신뢰 혹은 대부분의 재산을 걸고 실제 베팅에 나서는 자 - 가 아니라 ‘말로써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말해야 하고, 그들의 말은 가능하면 자극적인 게 좋고, 희망보다는 공포를 자극하는 게 오래 살아남기에 유리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