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버크셔 주총 참관기: 종합]
버핏의 마지막 주총과 ‘미니 버크셔’들
4시간의 Q&A 행사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버핏이 은퇴를 선언하자 주총장은 ‘스탠딩 오베이션’의 장관이 연출됐습니다. 보통 박수와는 다른 웅장함,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존경심이 울려 퍼졌습니다. 3년 연속 현지에서 행사를 참관한 박소연 신영증권 이사의 2025년 버크셔 주총 총평입니다. ― 버핏클럽
공연에 큰 감동을 받았거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표현할 때 우리는 기립박수를 보낸다. 영어로는 스탠딩 오베이션(standing ovation)이라는 용어를 쓴다. 존경의 의미를 담아 1분 이상 장시간 박수를 보내는 것이라 단순 박수와는 다른 웅장함,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울림이 있다.
이미 많은 언론이 보도했지만 2025년 주총장에서 버핏이 은퇴를 선언하자 스탠딩 오베이션의 장관이 연출됐다. 4시간 가까운 Q&A의 종료를 5분 남겨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오후 내내 인근 커피숍과 바, 음식점에선 삼삼오오 버핏 은퇴 이야기뿐이었다.






100년 가까운 삶을 살아낸 사람. 겸손하고 성실한데 투자도 성공한 사람. 워런 버핏은 이렇듯 추앙을 받는 인물이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없진 않다. 60년 가까이 주주에게 전혀 배당을 하지 않았고, 환경과 다양성 등 ESG 이슈에 미온적이며, 2008년 금융위기 땐 정부의 구제금융에 참여해 특혜성 투자를 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버핏의 자본배분 능력이다. 보험금으로 플로트를 구성해 장기 차입 구조를 완성한 후 내부 유보를 통해 복리 구조를 만들고, 상장사와 비상장사 그리고 채권에 골고루 투자하며 연복리 20%에 가까운 수익률을 창출했다. 1964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수익률은 무려 5,502,284%다.
주주총회가 끝난 후 호텔에 돌아와 기사를 뒤적거리다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버핏은 실로 불세출의 투자자였으며 이런 사람이 다시 나오기 힘든 세 가지 이유, ‘세 가지 P’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버핏의 성향(person)이다. 버핏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모든 시간을 전적으로 주식시장에 쏟아붓다시피 한 “주식에 미친 사람(the stock-intoxicated man)”이라는 것이다. 버핏의 성공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해서 얻은 희생의 결과물이다. 일례로 연례보고서를 읽으며 코를 박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가구에 부딪힐 뻔한 것은 다반사요, 가족과 친구들이 왔는지 가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들을 공원에 데리고 나가도 버핏은 벤치에 앉아 재무제표를 읽었다. 육체적으로는 공원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손실 이월공제나 상각에 대해 골몰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놀랍고도 대단한 점은 그것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즐겼다는 것이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했던가. 그것이 버핏의 가장 독특한 점이었다.
그의 기억력은 거의 초자연적인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몇 년 전 전화 인터뷰에서 어떤 책을 언급하자, 버핏은 자기도 50년 전에 읽었다면서 어떤 구절을 인용했다. 기자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니 버핏이 말했던 문장 그대로 쓰여 있어 소름 끼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70년간 10만 개가 넘는 재무제표를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그러다 보니 버핏은 거의 인간 AI라 할 정도로 모든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것을 패턴화해서 인식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어찌 보면 그것이 투자의 비법일 것이다.
둘째, 시기적 행운(period)이다. 버핏은 대공황이 발생한 1930년 경제와 시장이 바닥이었을 때 태어났고, 우연히도 그곳이 자본시장의 첨병인 미국이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가치투자의 선구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을 사사했다. 버핏 스스로도 자신이 ‘난소복권’에 당첨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아무도 주식시장에 주목하지 않았던 때에 숨겨진 보석 같은 주식들을 발굴해 초과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셋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의 돈을 받지 않고 내부 현금흐름을 묶어 가두리 양식장(package)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유명한 펀드 대부분은 ‘경기순응적(Procyclicality) 저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장이 좋을 때 돈이 들어오다 보니 그 돈으로 주식을 비싸게 사서 고점을 만들고, 시장이 하락할 때 환매가 들어오니 쌀 때 주식을 팔아젖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버크셔만큼은 이 저주에서 자유로웠다. 버크셔의 현금은 순수하게 ‘내부’에서 창출되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받지 않고, 누군가 버크셔 주식을 판다 해도 그것은 투자자들끼리 주고받는 것이다. 계열사들이 창출한 현금이 흘러흘러 지주사인 버크셔에 고이게 되는 구조다. 이런 독특한 구조는 그 어떤 전문 투자자도 누리지 못하는 강력한 이점이다. 버크셔가 보유한 3,400억 달러의 현금은 버핏이 은퇴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주총 마지막 날인 일요일 참석한 ‘마켈(Markel) 콘퍼런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장 인근에서는 소위 ‘나도 가치투자자’라고 주장하는 많은 운용사가 마케팅 행사를 개최한다. 무료 브런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네트워킹 목적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나도 서울에서 미리 신청을 해두었기 때문에 마라톤을 뛰고 늦을세라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마켈은 1930년 버지니아에서 설립된 보험 지주회사이며 시가총액은 약 250억 달러로 버크셔에 비하면 매우 작은 회사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보험사 플로트를 기반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하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다양한 비상장기업 및 상장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구조가 버크셔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켈은 스스로 “우리는 미니 버크셔”라고 주장한다. 그날 콘퍼런스도 왜 마켈의 지배구조가 독특한지, 마켈에 투자하는 것이 왜 유리한지 등등 운용 철학을 열렬히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마켈은 처음부터 버크셔처럼 설계된 회사는 아니었다. 100년 전 처음 설립되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까지는 평범한 물류 전문 보험사로 채권 중심의 보수적 운용을 했다. 그러나 1980년 창업자 3세대인 손자 스티브 마켈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회사가 많이 바뀌었다. 언제까지 고리타분하게 보험사에 머물러 있을 거냐면서 1986년 상장(IPO)한 후 버크셔의 모델을 도입하고 장기 가치투자 철학을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켈은 상장사이고 티커는 MKL인데, 나는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전 회사를 조사하다가 차트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거의 버크셔만큼이나 장기 우상향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이 주식을 지금까지 몰랐을까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똑똑한 사람은 더 많다.
흥미로운 것은 버크셔가 연복리 20%의 수익률을 냈다면 마켈은 14% 수준이라는 점이다. 물론 연 14%도 엄청나게 훌륭하지만 20%와 14%의 차이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아마도 누가 최상단에서 자본배분을 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천재의 자본배분과 범재의 자본배분의 차이랄까.
마켈에 대해 혹자는 버크셔와 달리 자본배분 성과가 저조하고 지배구조도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비판한다. 또한 버크셔는 보험 부문뿐 아니라 애플 등 상장주식과 비보험 계열사의 성과가 두드러지지만 마켈은 버크셔에 비해 비보험 부문이 여전히 취약해 보험 플로트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마켈 자회사 중 벤처투자 회사가 있는데 사실상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버크셔 해서웨이의 독특한 구조를 모방한 것만으로도 마켈은 엄청난 성과를 냈고 그것이 실제로 증명됐다는 사실은 나를 충분히 흥분하게 만들었다. 버핏의 재능은 유전될 수 없어도 그의 지혜는 전파되고 후대에 남겨질 수 있다. 버핏의 은퇴로 그의 시대는 저물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더욱 현명한 투자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켈과 같은 미니 버크셔가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어쩌면 그중 하나둘쯤은 한국에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