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미스터 마켓’과 ‘위대한 능멸자’ 상대하기
워런 버핏은 주식시장을 대하는 투자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감정 통제’를 꼽는다. 분석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극단적인 시장 상황에서도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워런 버핏 바이블 완결판》(워런 버핏 원저, 이건 편역) 8장 ‘시장에 대한 관점’의 해설을 쓴 정채진 투자자는 “감정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원칙을 정해놓고 지키는 것”이라며 “버핏과 멍거의 조언을 여러 번 읽고 깊이 생각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변동성이 큰 시기에 든든한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버핏클럽
워런 버핏은 2020년 2월 22일 공개한 2019년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주가가 크게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금리를 예측하는 것은 우리 방식이 아닙니다. 찰리와 나는 앞으로 1년, 10년, 30년 동안 금리가 어떻게 변할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다소 냉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예측을 자신 있게 말하는 전문가들은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그들의 태도 자체를 통해 본인을 더 많이 드러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수준의 금리와 세금 환경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주식은 장기적으로 채권보다 훨씬 나은 수익을 가져다주리라는 전망입니다.
물론 이 낙관적인 전망에는 한 가지 경고가 따릅니다. 주식시장은 내일 당장이라도 크게 하락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50% 혹은 그보다 큰 규모의 폭락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작년에 언급한 ‘미국 경제의 순풍(American Tailwind)’과 복리의 기적이 함께 작용한다면, 빚 없이 자기 돈으로 투자하고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에게는 주식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레버리지(빚)를 사용하거나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정말 조심하십시오!”
이 글은 짧지만 다음과 같은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변동성과 예측 불가능성
2025년 7월,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엄청난 쓰나미가 덮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이 영향으로 일본 여행 수요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재앙은 없었다. 현명한 사람들은 대지진설이 엉터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 해프닝으로 얻은 유일한 소득은 예측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복잡계다. 복잡계란 구성 요소 하나하나는 단순하더라도 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전체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말한다. 맑을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산 없이 나왔다가 비를 맞았다고 비난하지만, 기상청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대기 자체가 복잡계이기 때문에 날씨 예측은 애초에 정확하기 어렵다. 수많은 입자와 에너지가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이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낳기 때문이다. 일기예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기상청을 비난하지 않는다.
주식시장 역시 복잡계다. 날씨, 지진 예측이 어렵듯 주식시장의 단기적인 변화는 예상이 어렵다.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큰 곳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한국 주식시장은 한 차례를 제외하고 1년에 한 번꼴로 고점 대비 15% 이상 하락했으며 한 번은 50% 정도 하락했다. 기간을 20년, 30년으로 넓혀도 비슷한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변동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변동성이 언제 시작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예측 대신 준비를 한다. 한두 번은 맞힐 수 있지만 항상 맞힐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높은 변동성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고 항상 어느 정도 현금을 남겨놓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50% 정도의 하락이 발생했을 때 주식시장에서 퇴출된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는 투자 고수도 꽤 있었다. 그들의 실패는 이 변동성을 바라보는 생각이 틀렸기 때문이다. 변동성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했고 단 한 번의 폭락에 모든 것을 잃었다.
현명한 투자자는 변동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많은 투자자가 안전마진과 적절한 분산을 쉽게 이야기하지만 이 변동성에 대한 고찰 없이는 고수라고 말하기 힘들다.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해 어려울 때 앞으로의 전망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큰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고수라고 할 수 없다. 진정 현명한 투자자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동성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버핏은 주식시장에서 더 이상 매수할 기업이 없을 때 매년 현금을 쌓아간다. 예측 대신 대비를 하는 것이다.
변동성을 받아들이고 대비하는 투자자는 조울증 환자인 미스터 마켓(Mr. Market)을 상대로 현명한 거래를 할 수 있지만, 예측에 의존하는 사람은 ‘위대한 능멸자(The Great Humiliator)’인 주식시장에 휘둘려 최악의 선택을 할 때가 올 것이다.
장기 성장과 복리
“현재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몇 년간 주식시장이 부진하다 보면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기 마련입니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한국이라는 국가도 그렇게 약한 국가가 아닙니다. 이런 시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순리대로 지나갈 것이고, 한국 기업들도 경쟁력이 빛나는 시기도 다시 올 것입니다. 지금은 블랙박스 구간입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초단기 전망을 누가 제대로 맞출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나는 믿습니다. 내년 어느 시점이 오면 이런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겨울이 있으면 봄이 있다는 진리는 주식시장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한국 정치가 요동치고 그로 인해 경제와 주식시장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던 2024년 12월 10일 아침, 내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의 일부다. 한국 기업들의 2024년 실적이 나쁘지 않았고 전망이 괜찮은데도 저평가된 기업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장(한국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처럼 한국 시장은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불과 8개월 만에 주식시장은 크게 상승했다. 한국은 경기에 민감한 구조이기 때문에, 경기 침체기에는 다른 시장보다 더 크게 하락하지만 경기 회복기에는 더 크게 상승하는 특징이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감정보다는 데이터에 집중해야 한다.
버핏은 “미국에 베팅하라(Don’t bet against America)”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단기적으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주식시장이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은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진 체제적 강점과 자본주의가 가지는 혁신 역량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한국 역시 강한 나라다. 미국과는 다르지만 한국만의 강점이 있고, 위기를 경험해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높은 교육열과 근면성 덕분에 한국에도 장기적으로 순풍이 끊임없이 불어올 것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말처럼, 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는 감정에 좌우되는 인기 투표장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중계와 같다. 한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믿고 주식시장에 계속 남아서 좋은 투자 기회를 찾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의 수익성이 부동산이나 채권에 비해 높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기반 위에서 복리라는 마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부를 키워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감정 통제
주식시장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욕심이 교차한다. 가격이 오르면 더 오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떨어지면 끝없이 추락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인다. 이 과정에서 많은 투자자가 ‘이성’을 잃는다. 그래서 벤저민 그레이엄은 1940년대 중반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증권 분석 기법은 많이 발전했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진척이 전혀 없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8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척이 없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시장에 공포가 퍼질 때 사람들 대부분은 회피하려 한다. 반대로 주가가 급등하고 분위기가 과열되면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휩싸여 무리한 투자를 한다. 이러한 군중 심리에 휘둘리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큰 실수가 나오는 시점이다. 투자에서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결정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탐욕을 부릴 때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때 탐욕을 부려라”라는 버핏의 말은 따르기가 쉽지 않다.
버핏은 이런 투자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감정 통제’를 꼽는다. 뛰어난 분석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시장 상황에서도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원칙을 정해놓고 지키는 것이다. 기업을 분석할 때 정해진 기준을 철저하게 따르고, 주식시장이 크게 오르거나 떨어지더라도 그 원칙을 바꿔서는 안 된다. 자신의 약점도 냉정하게 평가하고 분석해야 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저지른 실수는 시간이 지나서 또다시 저지르기 마련이다.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급변하는 순간에 그 약점을 극복해 침착할 수 있도록 원칙을 세워서 지켜야 한다.
버핏이 2020년 초 작성한 글에 담겨 있는 통찰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워런 버핏 바이블 완결판》 8장 ‘시장에 대한 관점’을 다시 읽어보자.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조언을 여러 번 읽고 깊이 생각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길 바란다. 언젠가 변동성이 큰 시기에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