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대표, ‘적당한 기업’을 ‘탁월한 가격’에 사라

박성진 대표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철학을 따르는, 보기 드문 투자자다. ‘싼 기업’을 찾는 데 투자의 핵심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뚱뚱한지 날씬한지는 판단할 수 있다는 그레이엄의 말처럼, 1시간만 보면 이 회사가 싼지 비싼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버핏의 말을 뒤집어 ‘적당한 기업’을 ‘탁월한(저렴한) 가격’에 산다고 표현했다.


생명이 없는 행성에서 아주 우연히 생명이 생겨날 확률은 10억 년에 한 번 정도라고 한다. 긴 시간이 흐르면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할 정도로 긴 시간, 불교에서 영겁(永劫)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영어 단어가 있다. ‘이언(aeon)’이다.

이언투자는 여기서 출발했다. 긴 시간이 흐르면 생명이 탄생하듯, 오래 투자하면 가치가 커진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박성진 이언투자 대표는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는 10억 년이 걸리지만 복리의 마법은 10년 정도면 효과를 낸다”며 “10년 이상 가치투자를 하면 마법처럼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문사 CIO에서 독립하게 된 까닭은

지난 5월 4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이언투자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2014년부터 투핸즈투자자문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일하던 그는 올해 3월 독립해 이언투자자문을 설립하고 금융감독원에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새로운 사무실은 당산역 근처에 있는 오피스 건물이었다. 그는 집이 있는 목동 근처에 사무실을 얻으려 했는데 비싸서 당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당산은 여의도도 가깝고 2·5·9호선이 모두 지나는 교통의 요지”라며 “저평가된 가치주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언투자 로고

독립을 선언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자산운용사는 최고경영자(CEO)와 CIO가 동일한 구조를 갖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관된 투자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CEO이자 동시에 CIO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산운용사는 고객의 돈을 받아 자신의 투자철학에 맞게 운용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CIO 혼자서는 투자철학을 유지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처럼 시장이 공포로 급락했을 때는 주식을 사야 할 시점입니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야 하는’ 시점인 거죠. 하지만 주식을 팔아달라는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투자철학을 따르지 못합니다. 매도하는 수밖에 없죠. 저는 이럴 때 주식을 더 사라고 말해주는 고객을 원합니다. 고객을 끌어오는 단계에서부터 나의 투자철학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택해야 하는 겁니다. 투자하는 것은 CIO의 일이지만 고객을 끌어오는 것은 CEO의 일입니다. 이 때문에 투자철학을 마음껏 구현하기 위해서는 CIO와 CEO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하기에 힘들 것 같습니다.

“혼자선 할 수 없죠. 그래서 투자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한 명은 10년 이상 투자철학을 공유한 사람입니다. 직장을 다니며 파트타임으로 투자하다가 5~6년 전에 전업투자자가 됐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입니다. 고려대 주식 투자 동아리인 큐빅(KUVIC) 출신입니다. 다른 운용사들은 금융 투자 업계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투자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개인 투자자로 일하다 자산운용 업계로 들어왔고요.”

“철학을 파는 자문사가 되고 싶다”

새로운 도전입니다. 목표는 무엇인가요.

“철학을 파는 자문사가 되고 싶습니다. 시장에는 소위 가치투자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마다 워런 버핏과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에 대한 얘기를 하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정말 그레이엄의 철학을 연구하고 투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치투자로 성과를 내고, 그 철학을 투자자들에게 전파하고 싶습니다.”

가치투자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치투자는 좋은 기업을 싸게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좋은 기업은 무엇일까요. ‘마법공식’을 만든 조엘 그린블라트(Joel Greenblatt)는 적은 자본으로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고 합니다. 즉 자본수익률(return on capital)이 높은 기업이죠. 또 그린블라트에 따르면 싼 기업은 시가총액 대비 이익이 많은 곳, 즉 투자수익률(earnings yield)이 높은 곳입니다. 이는 주가수익배수(PER = 주가/주당순이익)의 역수인데, 결국 저PER 종목인 셈이죠. 그는 이 두 지표를 이용하면 시장 수익률을 웃도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표님의 생각은 다른가요.

“미국 투자자 토비아스 칼라일(Tobias Carlisle)은 《Deep Value(딥 밸류)》라는 책에서 마법공식을 재검토했습니다. 놀랍게도 ‘좋은 기업을 싸게 사라’는 명제에서 ‘좋은 기업’이라는 조건을 없앴더니 수익이 더 좋아졌습니다. ‘좋은 기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싸게 사는 것’이 가치투자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좋은 기업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싸게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투자하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방식은 담배꽁초 전략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버핏은 나중에 그 전략에서 벗어났죠.

“버핏이 그레이엄의 방식에서 벗어난 이유 중 하나는 운용 자금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는 점입니다. 결코 그레이엄 방식의 수익률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칼라일 얘기를 좀 더 해보죠. 칼라일은 루저(loser) 포트폴리오와 위너(winner) 포트폴리오로 나눠 수익률을 검토했습니다. 루저 포트폴리오에는 실적이 악화되거나 미래 전망이 불확실한 기업들이 포함됐죠. 위너는 향후 전망이 밝고 반짝이는 기업이었고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루저의 승리였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평균 회귀(reversion to the mean)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마진’과 ‘미스터 마켓’ 두 가지만을 그레이엄의 핵심 메시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레이엄의 명저 《증권분석》의 또 다른 핵심은 ‘평균 회귀’입니다.”

평균 회귀는 어떤 의미입니까.

“그레이엄은 《증권분석》의 맨 앞장에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을 실었습니다. ‘지금은 실패했지만 회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지금은 축하받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Many shall be restored that now are fallen and many shall fall that now are in honor).’ 그레이엄은 비정상적으로 좋거나 나쁜 상황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좋은 실적도, 너무 나쁜 실적도 지속될 수 없고, 결국 모든 것은 평균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위너나 루저보다는 일시적 위너나 루저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지금 루저처럼 보이는 주식을 사는 것이 수익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인 셈이지요.

버핏은 탁월한 기업(wonderful company)을 적당한 가격(fair price)에 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탁월한 기업을 고르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평균 회귀의 힘이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저항할 수 있는 기업은 극히 적습니다. 버핏과 멍거 같은 천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버핏의 말을 달리 풀어보자면 인생에서 이런 기업을 살 수 있는 기회는 10번 정도나 올까 말까 합니다. 적당한 기업을 탁월한 가격에 사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박 대표는 버핏보다는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을 따른다고 했다. ‘싼 기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투자 기업도 철저하게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발굴한다. 1주일에 2~3번은 기업 탐방을 다닌다. 그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정확한 체중은 몰라도 체중이 꽤 나간다는 것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는 그레이엄의 얘기처럼, 1시간 정도 살펴보면 어떤 회사가 싼지 비싼지는 대략 알 수 있다”며 “싸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투자할 만한 곳인지 깊이 검토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대표 약력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KAIST 경영공학 박사 수료
전 투핸즈투자자문 CIO
독서 모임 ‘거인의 어깨’  ‘사피엔스’  ‘EDGE’ 운영

싼 기업을 사기 위해 안전마진 중시

투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레이엄이 강조한 안전마진, 평균 회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먼저 안전마진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업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한 기업의 가치는 언제든 틀릴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격과 가치의 차이가 큰, 안전마진이 큰 기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동원산업, 미국 자회사 실적 더하면…

어떤 지표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나요.

“기초 체력을 보고 결정합니다. 기업의 가치를 판단할 때 일시적인 수익을 보면 안 됩니다. 2~3년 정도의 실적을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보통 10~20년 정도의 실적을 검토합니다. 이 회사가 돈을 많이 벌 때는 얼마나 벌었고, 못 벌 때는 얼마나 망가졌는지 보면 체력이 보입니다. 이 기초 체력과 현재의 시가총액을 비교해서 기업이 싼지 비싼지를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 참치 원양어업 회사인 동원산업은 참치 어가에 따라 수익의 진폭이 다소 큽니다. 많이 벌면 1,000억 원 이상 벌다가도 안 좋을 때는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10년 정도 순이익 추이를 보면 연간 500억 원 정도의 이익을 꾸준히 내왔습니다. 100% 자회사인 미국 스타키스트와 동부익스프레스 실적을 더하면 1,0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급락장에서 동원산업은 시가총액 6,000억 원 초반까지 하락했는데, 이 가격은 기초 체력에 비해 매우 싸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투자 방식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치투자와 안전마진의 철학을 구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가 만든 ‘바벨 기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탈레브는 전체 자산의 90%는 미국 국채처럼 굉장히 안전한 곳에 투자한다. 나머지 10%는 망할 수도 있지만 수익이 나면 수십, 수백 배가 될 수 있는 위험 자산에 분산해서 투자한다. 박 대표는 “탈레브는 가치투자자가 아니고 투자처 하나하나는 안전마진이 크다고 볼 수 없지만, 그의 투자 전체를 보면 안전마진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며 “그레이엄의 철학을 받아들이되 구체적인 수단은 얼마든지 변형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매도 시점은 어떻게 잡는지 궁금합니다.

“기업의 기초 체력을 보고 매수 여부를 결정했듯이 매도도 같은 기준을 따릅니다. 주가가 기업의 기초 체력에 접근하면 팝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팔고 나서 더 오르는 주식도 많습니다. 주위에서는 제가 팔 때 사면 30%는 벌 수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팔고 나서 오르면 아깝지 않은가요.

“처음에는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늘 꼭지에서 팔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신은 아니니까요. 기초 체력보다 더 오르는 것은 오버슈팅인데 이것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언제 시장이 변덕을 부릴지도 모르고요. 야구 같다고 할까요. 야구에서 만루홈런을 치면 멋져 보이죠. 하지만 저는 홈런을 노리다가 삼진아웃을 당하기보다는 매 타석 안타를 쳐서 점수를 내는 타율 높은 타자가 되고 싶습니다.”

목표 수익률은 3년에 2배

목표 수익률이 있나요.

“3년에 2배로 오를 만한 종목에 투자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한 종목에 ‘몰빵’ 하는 식은 아닙니다. 어떤 종목이 오른다고 확신할 수 없으므로 분산 투자가 필수죠. 보통 20~30종목 정도에 나눠서 투자하고 있습니다. 적정한 분산 투자 비중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집중하고 싶다면 5~10종목 정도로 좁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8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습니다.

“2003년부터 개인 투자를 하면서 2008년을 제외하고는 연평균 30~40% 이상의 수익을 내왔습니다. 2014년 투자자문회사를 차린 후에도 계속 이익을 냈습니다. 지난해 장이 좋지 않았지만 저희는 5% 이상의 수익을 냈습니다.”

시장이 떨어진 것을 고려하면 20% 이상의 수익을 낸 셈이네요.

“작년에는 3년에 2배 오를 만한 기업이 보이지 않아 보유 현금을 늘린 것이 효과를 봤습니다. 투자할 기업을 찾기 힘들다고 투자 기준을 낮추지는 않습니다. 또 저평가됐다고 생각한 사료주와 건설주 등에 투자했는데 이것이 남북 경제 협력주로 분류되면서 급등했습니다. 운도 좋았던 셈입니다.”

바이오나 IT 같은 ‘핫한 종목’에도 투자하나요?

“제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1시간 정도 살펴보면 기업이 싼지 비싼지 대략 판단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바이오 기업의 가격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는 신약 등의 가치를 판단하려면 1년도 부족할 겁니다. 버핏도 능력범위를 인정하고 아는 기업에만 투자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저는 4차 산업이 아닌 1차 산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식료 업종을 좋아합니다. 지금도 포트폴리오의 30~40%는 관련 종목을 담고 있습니다.”

장기 투자는 어느 정도의 투자 기간을 의미하는 건가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기업 가치가 가격에 반영될 수 있는 투자 기간이라고 하면 저는 최소 3년이라고 봅니다. 이 때문에 3년에 2배는 갈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이고요. 물론 운이 좋아서 6개월~1년에 2배 수익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주식은 3년을 기다려도 오르지 않을 때가 있고요. 그럴 때는 처음 매수했을 때의 아이디어를 점검합니다. 아이디어가 틀린 것이면 아쉬워도 매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판단이 맞는다고 생각되면 3년 이상도 보유하고 기다립니다.”

주식 투자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매우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IT 기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시작했죠. 직장 생활을 5년 해보니 여기에는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매일 야근하고, 술 마시는 임원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투자를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KAIST에서 경영공학 학위를 땄습니다. 실제로 광운대에서 겸임교수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가치투자를 알게 됐습니다.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실제 투자를 해보니 잘 맞더군요. 성과도 좋았고요. 5년 정도 투자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다 이 정도면 되겠다는 확신이 든 2007년 말에 전업투자자로 나왔습니다.”

2008년에 전업투자 시작해 겸손을 배우다

타이밍이 좋진 않았네요.

“2008년 금융위기를 바로 맞았죠. 어려웠습니다. 유일하게 손해를 본 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험이 도움이 됐습니다. 항상 겸손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할까요. 항상 주의하고 보수적인 자세를 견지할 수 있도록 해준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개인 투자자로 잘나갔는데 굳이 회사를 차린 이유가 있나요.

“저는 책을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독서 모임도 3개나 하고 있죠. 혼자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음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다른 관점, 생각을 접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투자자는 제한 없이 투자할 수 있고 시간도 자유롭고 좋은 점이 많죠. 하지만 돈을 버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돈을 벌어서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 목적이죠. 자문사를 하면 제 투자철학에 공감하는 고객, 동료 등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문사는 철학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주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그 자체로 저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셈입니다.”

한국에서도 존경하는 투자자가 있나요.

“2003년 처음 가치투자를 접했습니다. VIP투자자문 공동 대표인 최준철, 김민국 대표가 쓴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이라는 책을 보고 입문했죠. 그 책을 통해 가치투자자로 성장하는 첫 번째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굉장히 빚을 진 셈입니다.”

올해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을 듣고 싶습니다.

“가치투자자들은 시장 전망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3년에 2배 될 기업을 찾을 뿐입니다. 최근 주가가 올라서 그런 기업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폭락한 주가에서 회복하지 못한 기업이 꽤 있습니다. 지금 새롭게 투자하고자 한다면 이런 기업 중 기초 체력이 튼튼한 기업에 충분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조언해준다면.

“보수적인 개인 투자자 중에는 예·적금에만 ‘올인’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투자의 제1 원칙이 ‘잃지 않는 투자를 하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적금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사실상 잃는 투자입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아야 합니다. 반대로 주식에 투자하며 허황된 수익률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년에 몇 배 오르기를 기대하거나 매일 1%씩 수익을 내겠다는 식이죠. 하지만 소림사에 들어갔다고 당장 무술 고수가 되는 건 아닙니다. 마당도 쓸고 물도 길어 와야죠. 제대로 된 책을 읽고 작은 돈으로 투자하면서 내공을 키워야 합니다.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박 대표는 인터뷰가 늘 부담이 된다고 한다. 가치투자자로서 내세울 수 있는 새로운 얘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증권분석》과 《데이비드 드레먼의 역발상 투자》 추천

이들에게 추천하실 만한 책이 있나요.

“그레이엄의 《증권분석》을 추천합니다. 이 책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1부는 꼭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그레이엄 철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뒷부분에 비해 그리 어렵지도 않습니다. 이 책을 보고 가치투자의 철학에 공감했다면 실전 투자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데이비드 드레먼의 역발상 투자》를 읽어보세요. 드레먼은 ‘인기 없는 소외주에 투자하라‘고 조언하는데 어떤 기업을 골라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기 때문에 유용할 겁니다.”

박 대표는 인터뷰가 늘 부담이 된다고 했다. 해줄 수 있는 새로운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언제나 그레이엄이 1937년에 말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투자 분야에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고 세상이 바뀌는 것에 따라 약간의 변주만 하면 되죠.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 투자하고 제 아이디어가 맞는 것을 보면 재미있고 보람을 느낍니다. 기본에 충실하게 투자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제 목표입니다.”

  • 〈버핏클럽 2호〉(2019년 6월 발행)에 실린 박성진(이언투자자문 대표) 님의 인터뷰 글입니다.
  • 글: 강영연 _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재테크팀에서 일하고 있다. ‘변동성의 시대: 대가에게 길을 묻다’라는 시리즈를 연재하며 가치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읽으면 돈을 벌 수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 사진: 오환 _ 30년 경력의 사진 작가. 1990년 자동차 전문지를 시작으로 <에스콰이어>, <모터트렌드> 등을 거쳐 KSF(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 공식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버핏클럽의 모든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에 대한 모든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