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는 ‘부정의 길’을 뜻하는 사고법이다. 진리를 파악하는 대신 진리가 아닌 것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는 이 사고법을 통해 투자자들 사이에 받아들여진 몇몇 ‘투자철학’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한다. ‘가격-가치 갭 모델’ 대신 ‘제한적 합리성 모델’을 제시하고, ‘가치주 대 성장주’의 이분법도 해소한다. 나아가 구체적인 투자 대안의 하나로 ETF를 제시한다.


‘나의 투자철학과 방법론’이라는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고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 20년 가까운 기간을 주식 투자자로, 그중 10년 이상을 기관투자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투자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 원칙을 공유함으로써 경험을 나누고, 다른 분들의 피드백을 통해 원칙을 가다듬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 터다.

금융시장은 복잡 적응계이고, 원칙이란 늘상 변화한다. 내가 오늘까지 가지고 있던 원칙이 당장 내일부터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투자를 어떻게 하는지 좀 알겠다’라고 느낄 때마다 그 원칙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인쇄된 글의 형태로 원칙을 출간하면 그 순간 원칙이 고정되고, 새로이 일어날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늘상 변하는 그 무엇을 변하지 않는 형태의 매체에 실어 보낸다는 일이 그 자체로 꺼려졌고, 혹여 그 매체를 읽고 곧이곧대로 적용할 이들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투자철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약간 불편하다. 투자란 그다지 고고한 행위가 아니다. 자본시장을 통한 산업 활성화라든가, 가격 책정 기능이라든가, 선진 서비스업이라든가,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가진 자산을 비싼 값에 팔아서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행위다.

물론 세상사 다양한 영역에 ‘철학’이라는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있고, 투자 분야에서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사고가 없지는 않다. ‘투자철학’을 논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특정 ‘스타일’을 선호하고 다른 형태의 투자 방법론을 소위 ‘사파’로 취급한다. 나의 원칙이나 습관, 스타일, 취향에 ‘철학’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소위 ‘선민의식’이 생길 수 있다. 투자철학에 대한 논쟁은 때로 이념 논쟁 같은 양상으로 이어진다. 이념 논쟁은 수익률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투자는 결국 돈을 벌고자 하는 행위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높은 확률로 돈을 벌 수 있는 의사결정 프로세스’다. 건전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속 가능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원칙인지 아닌지만 중요하다.

이런 연유로 ‘투자철학’은 썩 내키는 주제가 아니지만, 흔히 따라야 할 원칙으로 알려진 몇몇 ‘방법론’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책을 사서 읽는 수고를 한 독자들께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시작해본다.

탁월한 트레이더이자 사상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부정의 길)’라는 사고법을 강조한다. 무엇이 진리인지 말하기 어려울 때,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말하는,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이다. 좀 더 실용적으로 표현하면, 무언가 좋은 것을 더해서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나쁜 것을 빼내서 상황을 덜 나쁘게 만들기는 쉽다. 보약을 먹는 것보다 담배를 끊는 게 더 높은 확률로 건강을 좋게 만드는 길인 것처럼 말이다.
비아 네가티바는 신학적 탐구에도 적용된다. 그리스 정교회는 ‘신이란 무엇인가’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무엇이 신이 아닌가’를 언급함으로써 진리를 찾아가는 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그리스어로 아포파시스(apophasis)라고 한다.1

이는 칼 포퍼의 ‘반증주의’와도 통하는 바가 있다. 어떤 명제가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반증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틀릴 수 있는 형태’의 명제가 아니면 유사과학이고 신뢰할 수 없는 명제다. 그러한 명제에서 쌓아 올린 원칙으로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특정 철학 하나만 신봉하는 일이다. 철학은 정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철학이다. 특정 철학만 옳고 다른 철학은 틀렸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철학적이지 않다.

이 글에서는 흔히 알고 있고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투자 원칙들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하겠다.

가격-가치 갭 모델 ⇒ 제한적 합리성 모델

우리는 주식의 ‘내재가치’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나름 ‘건전한’ 투자 원칙 중 하나로, ‘주식의 내재가치를 잘 계산해서 그보다 싼 가격에 산 다음 기다리면 그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몇 가지 세부 가설로 쪼갤 수 있다. 1) 주식은 기업의 자기자본에 대한 소유권이다. 2) 기업에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 3) 따라서 주식에도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 고유의 가치, 즉 ‘내재가치’가 존재한다. 4) 주식의 가격은 ‘내재가치’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5) 가격은 언젠가는 ‘내재가치’를 반영한다.

이 가설에 따른 행동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기업의 가치를 분석한다. 2) 기업의 가치를 주식 수로 나누어 주식의 ‘적정 가격’을 구한다. 3) 가격이 가치(=적정 가격)보다 낮을 때를 노려서 주식을 산다. 4) 가격이 가치를 반영해 상승할 때까지 기다린다. 5) 상승하면 주식을 매도한다.

나는 이 방법론을 ‘가격-가치 갭 모델’이라고 부른다(보통 ‘가치투자’라고 부르는 방법론이지만, 그 용어는 다양하게 변주되어 오해를 낳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겠다).

이 방법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기업의 가치에 집중하기 때문에 시장의 등락에 휩쓸리지 않는다. 보수적이고 편안한 투자, 잃지 않는 투자를 한다. 가치는 쉽게 변하지 않으니 가격 하락은 바겐세일 기회일 뿐이다.” 좀 더 나아가서 이런 주장도 한다. “기업의 가치를 바라보지 않는 다른 투자는 불건전한 투자다. 허상을 좇는다. 결국 실패한다.”

다른 방법론에 비해 이 방법론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조금 따져보면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가치가 1만 원인 주식을 8,000원에 샀다고 하자. 기대수익률은 25%다. 1년 후에 가격이 1만 원으로 오르면 1년에 25% 수익을 냈다. 훌륭하다. 그러나 만약 10년 후에 1만 원이 되었다면 복리 연환산 수익률은 2.26%다. 은행 이자보다는 좋지만 기대 대비, 그리고 감수한 리스크 대비해서는 글쎄요다. 그래도 뭐, 일단 돈을 벌었으니 나쁘지는 않다.

더 큰 문제는 시장에 대한 가정이다. 경제학자들은 금융시장을 볼 때 ‘효율적 시장’을 가정한다. 가격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정보를 아무리 분석한들 초과수익을 낼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주식의 가격이 8,000원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즉 가치가 8,000원이기 때문에 가격이 8,000원이라는 것이다.
‘가격-가치 갭 모델’에서는 이 문제를 ‘시장은 비효율적이다’라고 쉽게 피해 간다. 근거는 다양하지만, 어쨌거나 시장은 세상에 나와 있는 정보를 그다지 잘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과 가치에 차이가 생긴다는 뜻이다.

좋다. 시장이 비효율적이어서 1만 원짜리를 내가 8,000원에 살 수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왜 나중에 1만 원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시장이 정말 친절하게도 내가 주식을 싸게 사라고 8,000원으로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가, 내가 주식을 ‘줍줍’한 후에는 제정신을 차리고 ‘효율적’으로 작동해 1만 원으로 올려준다는 말인가?

‘시장이 비효율적이다’라는 말은 어제도 비효율적이었고 오늘도 내일도 비효율적일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왜 오늘 8,000원이었던 주식이 언젠가 1만 원이 되어야 하는가? 9,000원이 될 수도 있고 2만 원, 10만 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인위적으로 초과수익을 낼 수 없는데, 시장이 비효율적이어도 초과수익을 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결과는 랜덤하게 결정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말 큰 문제는 바로 ‘반증 가능성’이다. 가치가 1만 원인 주식을 8,000원에 샀다. 그런데 가격이 7,000원으로 하락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더 산다. 왜냐하면 기대수익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격이 8,000원일 때는 기대수익이 2,000원(10,000-8,000)이었는데, 이제는 3,000원(10,000-7,000)으로 커졌다. 즉, 할인 폭이 더 커졌다. 그리고 또 하락해 6,000원이 되었다. 어떡할까? 더 사야 한다. 할인 폭이 더 커졌으니까. 그렇게 하락하면 할수록 주식을 더 사고, 언젠가는 대주주가 될 수도 있겠다.

문제가 무엇일까? 가격이 하락한 현상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시장이 비이성적인 이유로 가격을 가치보다 떨어뜨렸다’ 혹은 ‘시장이 이성적인 이유로 고평가된 주식을 적정 가치로 떨어뜨렸다’. 후자라면 내 가치 계산이 틀렸다는 뜻이다.

내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리스크를 줄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모델에서는 가격이 하락할수록 비중을 늘리라고 종용한다. 즉,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리스크를 더욱 늘리게 되는 모델이라는 뜻이다!

‘반증 가능성’의 중요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가치가 1만 원이다’라는 명제는 반증 불가능한 명제다. 8,000원이었던 주식이 1만 원이 되면 내가 옳았던 것으로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이 주장도 문제가 있지만 넘어가겠다). 그러나 8,000원에 머무르거나 7,000원, 혹은 6,000원이 되었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시장이 비이성적이고 더욱 비이성적이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으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틀리지 않는 이러한 명제가 ‘반증 불가능한 명제’이고, 틀렸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투자 원칙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리스크를 더 늘리는,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원칙이 된다.2

이 문제에 대해서는 흔히 이렇게 답변한다. 1) 틀리지 않도록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2) 틀릴 경우를 대비해서 가능한 한 싸게 사야 한다. 일면 무책임한 발언이다. 얼마나 분석해야 철저한 분석인가?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예측의 정확도가 올라가지는 않다. 정보의 양이 많으면 예측에 대한 확신이 더욱 올라가서 오히려 예측의 질이 낮아진다. 그리고 ‘가능한 한 싸게’는 얼마나 싸야 한다는 것인가? 가격이 하락하면 하락할수록 ‘저평가되었을 가능성’과 ‘내가 틀렸을 가능성’은 동시에 올라간다. 문제를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럼 이 모델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행동경제학의 용어를 가져와서 나는 ‘제한적 합리성 모델’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이유로 주식을 사고판다. 그중에는 가치를 계산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이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정보를 온전히 취득할 수는 없다. 각자의 원칙(혹은 느낌)으로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8,000원의 가격에서 누군가는 사고 누군가는 판다(그러니까 ‘가격’이 형성된다).

투자자로서 던져야 할 질문은 ‘여기서 사는 게 옳은가, 파는 게 옳은가’가 아니라 ‘여기서 사는 사람은 왜 사며, 파는 사람은 왜 파는가’다. 물론 궁극적으로 전자의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대답해야겠지만, 그 전에 후자의 질문이 위치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여러 투자 기법을 공부하고, 기업을 분석하고, 산업 동향을 파악하고, 거시경제와 국제 정세도 살핀다. 그 모든 작업의 귀결점은 지금 가격이 싼지 비싼지, 혹은 내일 주가가 상승할지 하락할지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자산에 대해서 ‘납득할 만한 가격대’를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주식에 대해서 “3만 원이면 열에 아홉은 비싸다고 여길 것 같아” 혹은 “5,000원이면 너무 싸다고 달려들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등의 추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추론을 하기 위해서 위의 여러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격이 6,000원까지 하락했으면 ‘너무 싸다’고 할 수 있는 5,000원에 근접했는데, 여기서도 주식을 파는 사람들은 왜 파는 걸까?” 혹은 “3만 원이면 상승 여력을 거의 소진한 것 같은데, 여기서도 주식을 사는 사람들은 뭘 기대하고 사는 거지?”라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가치를 제외한 여러 투자 기법들, 피라미딩이니 기술적 분석이니 하는 기법들,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 두뇌의 작동 원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는 나만의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현재 A 기업의 주식 가격은 8,000원이다. A 기업은 B와 C 사업을 하고 있는데, B는 안정적이고 C는 불확실하지만 대박이 날 수 있다. C가 잘되면 이익이 두 배로 늘어나고, PER이 현재 수준인 10배로 유지된다면 16,00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 C로 인한 호실적에 시장이 열광해 PER이 20배로 상승하면 가격은 32,000원까지도 상승할 수 있다. 기대수익률은 좋은 시나리오에서 100%, 아주 좋은 시나리오에서 300%다. 만약 C 사업이 실패하면 B 사업만으로 이익을 내야 하는데, B 사업에 동종 업계의 PER 8배를 적용하면 6,000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잠재 손실 폭은 -25%다. C 사업의 성과는 6개월 후에 확인할 수 있고, 그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재무제표로 실적이 공시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1년 이내에 100%에서 최대 300%의 수익을 볼 수도 있고 -25%의 손실을 볼 수도 있다.현재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진행 중이라 사람들이 C 사업의 성패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좋은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미·중 갈등은 대선을 앞둔 정치적 액션이라고 생각하고, 선거 전후 봉합될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형태로 투자 아이디어를 작성하면 위 ‘가격-가치 갭 모델’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시기를 명시했기 때문에 연환산 기대수익률을 추정할 수 있다. 시장이 무작정 비효율적이라고 가정하지 않았고, 어떤 이유로 가격이 낮게 책정되었고 향후 어떤 이유로 그 왜곡이 해소될 것인지 추론한다. 시기를 명시하고 세부 가설을 설정했기 때문에, 특정 시점이 지난 이후 혹은 특정 이벤트가 발생하면(혹은 특정 시점까지 발생하지 않으면), 다양한 형태로 이 시나리오는 ‘틀릴 수 있게’ 된다. 틀리면 어떤 요소에서 틀렸는지 추론하고, 향후 새로운 의사결정을 할 때 이번에 틀린 요소를 반영해 수정할 수 있다.

복잡계에서 ‘원칙’은 ‘단일 시행’의 결과를 정확히 맞히고자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 시행’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자 사용하는 도구다. 원칙을 설계할 때의 핵심은 피드백 루프다. 원칙을 적용해서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을 때 무언가를 배워서 원칙을 개선할 수 있어야 좋은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