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은 12년 전인 글로벌 금융위기 때 나이가 많아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치부되었다. 그러나 당시 투자은행에 대한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서준식 숭실대 교수는 투자은행 주식을 매입하려던 의사결정을 버핏 덕분에 접었다고 들려준다. 그동안 버핏을 비판한 ‘타자’들 가운데는 ‘아웃’된 사람이 더 많았다. 최근 비판도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서 교수는 말한다.


1. “내 아버지를 포함해 위대한 투자자들도 일정한 수준의 나이가 되면 감을 잃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명 자산운용사 회장 켄 피셔가 최근 CNBC-TV18 인터뷰에서 올해 워런 버핏의 투자 행태를 두고 밝힌 의견이다.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의 버핏도 최고의 스승으로 꼽는 필립 피셔의 아들에게 이런 일침을 맞았으니 뼈가 아플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급락해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올해 1분기 약 60조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현금 비중을 계속 높여 자산의 30%가 넘게 보유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번 급락장 기회에서도 주식 비중을 높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보유한 항공주 전량을 저가 수준에서 손절 매도했다.

이후 주가가 급반등하자 혼란한 상황에서 버핏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사람들은 이제 그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버핏 추종자’, ‘리틀 버핏’으로 불리던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마저 자신이 버핏보다 더 날렵하게 투자할 수 있다며, 보유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버핏의 투자 행태는 실수라며 정치적 발언에 이용했다. 버핏이 워낙 ‘인싸’이기에 과장스럽게 표현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시장에서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문득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 위대한 철학가 소크라테스는 책을 한 권도 집필하지 않았다. 유명한 철학서 《소크라테스의 변명》 역시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그의 수제자 플라톤이 저술했다. 평소 ‘버핏빠’를 자처하는 나는 함구하고 있는 버핏을 대신해 여러 변명을 펼치고 싶어졌다.

2. “이제 버핏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서 판단력이 흐려지신 것 같아요.”

2007년 원/달러 환율은 900원대 초반이었다. 달러가 저렴했다. 미국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한국의 가격보다 25% 이상 쌀 때는 달러를 매수하는 것이 나의 투자 원칙이다. 이 원칙에 비추어 당시 달러는 좋은 투자처였고, 나는 달러예금을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스타벅스 커피 가격 비교를 통한 외환 투자법 예시

2006~2007년 원/엔 환율 = 100엔당 800원 수준
→ 일본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한국의 가격보다 25% 이상 저렴
→ 엔화가 저평가되어 발생한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 엔화 매수

2009~2013년 원/엔 환율 = 100엔당 1,500원 수준
→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일본의 가격보다 25% 이상 저렴
→ 원화가 저평가되어 발생한 일시적 현상으로 분석, 엔화 매도

시간이 지나 2008년 초가 되었다. 달러예금에 재가입하려고 보니 예금 금리가 5%대에서 2%대로 급락해 있었다. 미국 정책 금리의 급격한 인하로 시중 금리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복리의 마법을 중요시하는 나는 큰 고민이 되었다.

결국 보유한 달러로 미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저평가 주식을 매입하기 위해 대상을 물색했다. 부지불식간에 모멘텀 투자의 유혹이 찾아오고 있었다. 당시 해외 시장에서 각광받던 주식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슈로 주가가 반 토막 난 투자은행(IB)들이었다. 중국 투자공사, 싱가포르 테마섹, 아부다비 투자청 등 각 나라의 최고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국부 펀드들도 당시 상황을 기회로 보며 메릴린치 등 IB들에 50~75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많은 언론은 지금이 해외의 IB를 싸게 살 기회라고 부추겼다. 이후 한국투자청과 국내 시중은행 한 곳이 메릴린치 지분을 대량 매입했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IB 주식 매입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베어스턴스라는 IB를 탐방한 지인에게서 이곳의 부실 문제는 이제 마무리 국면이며 최악의 상황은 이미 지났다는 의견을 전해 들었다. 결국 베어스턴스 주식을 매입하기로 결정했고, 시차 때문에 주문 가능한 저녁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저는 지금이 IB를 매입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다만 버핏 할아버지가 아직은 IB의 가치를 계산하기가 어려워서 좋은 투자처가 아니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대요. 이제 버핏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서 판단력이 흐려지신 것 같아요.”

그날 어느 운용사 해외투자 운용팀장을 우연히 만나 들은 이야기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리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버핏은 나의 우상 아닌가. 게다가 나는 이런저런 분위기에 휩싸여 정작 투자 대상의 가치를 꼼꼼히 산정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어차피 당시 IB는 가치 산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에 가치 대비 저평가되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베어스턴스 주식 매수를 포기했고 대신 당시 버핏이 보유하던 배당률 높은 제약주를 매입했다. 그리고 아마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베어스턴스 파산 뉴스가 나왔고 전 세계 모든 IB 주식의 가격 폭락이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아찔했다. 12년 전에도 이미 나이가 많아 판단력이 흐려진 것으로 치부되었던 버핏 할아버지에게 큰 은혜를 받은 셈이다.